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0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1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3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4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5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6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8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9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4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존 파울즈, <마법사>
(7일) 존 파울즈는 <마법사>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문적 관점에서는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소설(처음에 평을 한 많은 사람들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을 대부분의 독자가 늘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받아들이게 되었다."(5쪽)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는지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어본 존 파울즈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부분부분 흥미로운 내용이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긴 분량에 그 정도의 부분도 없으면 말이 안 되겠지. 소설의 구조가 중반을 넘어가야 보인다는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그 전까지 나온 내용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자기 과시적(자위적)이라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별로 할 말이 없다. 끝까지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 봤으나 중간에 그만뒀어도 괜찮을 뻔했다. 몇 년쯤 지난 후에야 다시 볼 마음이 생길지 어떨지... 이 소설을 좀 더 풍요롭게 보기 위해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특히 <태풍>이나 <오셀로> 정도는 기본적으로) 봐줘야 하고 그리스-로마 신화나 호메로스의 작품과 친숙하면 좋을 듯하다.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
(9일) 다른 서사 장르(연극,드라마,영화,만화,애니메이션 등)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니시오 이신의 소설은 목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내 취향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의 전환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파우스트 계열 작가들 중 빼놓고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게 많은 작가였기 때문에. 그래서 데뷔작이자 "헛소리 시리즈"의 시작이며 23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인 <잘린머리 사이클>을 읽고 나서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속 볼지, 아니면 이걸로 끝낼지. 그래야 개운할 것 같았다.
초반까지만 해도 이 책으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중반, 종반으로 갈수록 이 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매력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신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장르적인 재미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말장난(헛소리)의 수준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헛소리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분명 니시오 이신은 도선생의 <죄와 벌>에 나오는, "저는 헛소리를 좋아합니다. 헛소리란 게 참 놀라운 거거든요. 백마디 헛소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리에 도달하게 되지요."라는 구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자기만의 인식이 명확했기에 가능한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과도하게 개인화된 개인들(독자들)에게 보내는 '청춘'에 대한 메시지까지 분명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396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사 - "...이 녀석을 좋아해요." (...) "그러니까, 그만 두세요" - 에선 소설의 정점을 찍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식의 대사를 구사해버리다니. 그런 말을 한 주인공에게도, 그런 전개를 택한 작가에게도 살짝 감동했다고나 할까... (수줍)
어쨌거나, 이로써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 시리즈를 계솔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뒤에 "OTL"을 붙이고 싶을까... ( -_-)a)
단편들
박민규, "루디"
ㅡ 예전에 박민규의 "깊"을 보고 어마무지하게 탄복한 적이 있는데 이 단편을 보고나서도 그랬다. 다들 조그마한 저수지에서
아웅다웅하는 동안 혼자 바다에서 노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느낌이었달까. 인터넷의
누군가는 박민규가 이제 세계문학을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민규는 앞으로 한국 내 작가 중에서 (천박한 분류기는 하지만) 순수,
대중, 장르, 라노베 정도로 나뉜 한국 소설 독자들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작가가 될 가망성이 크다.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는, 진작부터 챙겨보았던 독문학 전공의 조효원 평론가가 박민규의 "루디"를 보고 이렇게
써놓기도 했다. 미래의 한국문학사가들에게 2010년 봄은 "루디"로 기억될 것이고, 그것은 "루디"가 이룬 수많은 성취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라고.
데니스 루헤인, "그웬을 만나기 전"
ㅡ 2년 만에 읽은 단편인데, 여전히 좋았다. 후쿠시마 료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미를 발견해야 할 수고 없이도,
리얼리티와의 접점을 모색해야 할 필요 없이도,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단편이다. 다음은 2년 전에 이 단편을 읽고 해둔 메모. // 얼마
전에 학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어떤 책이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집 <코로나도>에 있는 “그웬을
만나기 전”을 보았다. 책 뒤표지에 있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2005년에 발표되어 “올해의 미국 최고 단편선” 뿐만 아니라
“올해의 미국 미스테리 단편선”에까지 실렸다고 하니. 형식적인 면은 전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엔 잘 안
읽혔다. 중반부터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선 채로 한 번 다 읽고 의자에 앉아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봤다. 주제 그
자체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참 대단한 소설이었다. 그 소설집에 있는 다른 단편도 몇 편쯤 더
봤는데 이 소설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설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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