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9일 일요일

5월 1일 ~ 5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6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9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2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3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4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5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7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18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9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0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1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2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3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4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5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9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0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7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쿳시가 그간의 작품 속에 내재시켜 온 사유 내지는 문제의식을 총결산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편소설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읽는 거의 내내, 쿳시 매니아를 위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동시에 쿳시의 소설(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큰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타당한 예는 아니지만, 나만 해도 처음 이 소설을 볼 땐 지금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땐 고작 <추락> 한 편만 본 상태였다.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또한 한 인물(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이 미세하게 모습(설정)을 바꿔가며 각 단편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 방식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각 단편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 상황을 코스텔로라는 인물에 투사하고 다시 그것을 극단적인 쪽으로 밀어붙여, 그것에 대응되거나 적대적인 생각이나 관념, 상황과 힘겨루기를 하게"(299p) 한다. 그리하여 문제에 대한 정답을 유예하며 정답의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애쓰는데, 이러한 소설 속 "끝장 토론"을 보며 내 사고가 풍부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다른 의견들이 두루 존재할 수 있는지 그저 의아하고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대화의 방식에서 도선생의 작품 스타일이 떠올랐지만, 도선생보다는 쿳시가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극단적이고 합리적이며, 주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큰 것 같았다(만 도선생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쿳시는 정말 대화를 잘 구사하는 작가다.


 내 소설 취향에 따르면 이 소설은 별 이의 없이 1위에 랭크되어야 한다. 하지만 고작(?) 7위다. 이 소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무지 때문이다. 내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부분, 아예 지식이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 주노 디아스의 데뷔작이자 단편집 <드라운>을 읽었(지만 단편집이므로 순위 목록에선 제한)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미국 이민자에 대한 자전적 내용 외부에 레이먼드 카버의 향취가 많이 묻어나는 단편들이었다. 그 어떤 작품이라도 작가의 내면이 투영될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어떤 고귀하고 진실된 내용일지언정 작가 자신의 자전적(혹은 고백적) 소설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본 뒤 드문드문 밀려드는 묘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 리스트 1차 목표였던 30위까지는 우선 달성됐다. 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나 기왕 시작한 거 100위까지 목록은 작성하고 계속하든지 그만두든지 해야겠다. (독서 속도로 봐서 꽤 오래 걸릴 듯) 블로그를 옮기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못 느껴(=귀찮아서) 우선 리스트만 특화시킨 채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구글과 통합 이후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대신 다른 컨셉의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었다. 블로그와 트위터의 장점을 잘 조합해서 만든 그런 곳이다. 클릭(강요)



댓글 2개:

  1. "클릭(강요)" 완전 강하다

    나도 모르게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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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혜 - 2010/05/11 17:56
    님하는 낚인 거임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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