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9일 토요일

5월 21일 ~ 5월 31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0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2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3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5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6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1일)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은 참 기상천외한 소설이다. 기상천외하다는 점에서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이나 마이조 오타로의 <아수라 걸>이 함께 떠올랐다. 이 소설은 "죽은 술시중꾼만한 술시중꾼이 없기에 그를 찾아 나선 사나이의 이야기"(183p)다. 그런 가운데 '판타지한' 스토리가 연속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판타지 장르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판타지 작품에는 보는 사람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습, 논리, 규칙들이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애시당초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의 얼개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런 이유로 보는 시종일관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낯설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역자가 "작품해설"란에 적어둔 것처럼 "구전 문학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191p)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나 그것이 입담 좋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들에게 구성지게 풀어놓는 투였다면 더욱 좋을 뻔했다.



+열흘 동안 저 (얇은) 책 한 권밖에 못 봤다. 계획대로라면 존 파울즈의 <마법사>도 다 봤어야 하지만 아직 1권도 다 못 본 상태. 어제 밤부터 몸이 안 좋아서 오늘(5/30) 오후까지 계속 자다 깨다 했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 동네 죽집에서 죽을 사왔는데 3분의 1도 못 먹었다. 이렇게 사경을 헤맨 채(응?) 누워 있는 동안 경기지사 심상정 후보가 끝내 사퇴하고 말았다. 내가 비록 경기도민은 아니지만, 괜히 아팠던 게 아닌 것 같다. 기분도 꿀꿀한데 나중에 장원준과 김광현의 선발 맞대결이나 봐야겠다. 이제 오예스 먹으면서 허기 때우며 밤 새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5월이 끝나기 전까지 하려고 했던 일 딱 하나만은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다 싶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대로 인간의 의지만큼 나약한 게 어디 있나 싶다. 그래도 이 약해빠진 의지 하나 믿고 계속 가야지.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5월 11일 ~ 5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7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3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6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7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8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19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0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1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2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3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4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5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6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0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1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6일) 존 파울즈는 <만티사>에서 소설을 완벽하게 가지고 논다. 소설을 가지고 노는 수준을 넘어 유머마저 가지고 노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은근히 야하면서 동시에 노골적으로 외설적인 1장을 불편 없이 보고 나면, 기존의 소설들에서 접하기 어려운 짜릿한 내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존 파울즈가 소설 속에서 화자에 대해, 작가에 대해,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비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42년간 써온 일기의 영향 탓이 컸을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결국 일기(쓰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소설에서 '대화'는 연극에서의 대화와도 달라야 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와도 어느 정도의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면, 처음 접하는 소설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으로, 작품 속에서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가만 보아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고수들은 소설에서의 대화가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엄청나게 잘 구사한다. 쿳시가 그렇고 또한 존 파울즈가 그렇다. 후반부, 설명과 의미 부여에 너무 공을 들인 것 같다. 맥락상 필요했다는 생각과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는 생각이 함께 한다. <콜렉터>에 이어 다시 한번 씨익,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여자독자들이 존 파울즈의 소설(이나 일기)를 읽고 어떤 생각(혹은 감정)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 신형철이 정호승의 칼럼을 비판한 아름다운 글(http://bit.ly/ccO8ox)을 읽고나니 더욱 신형철의 글이 읽고 싶어져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씨네21> "김혜리가 만난 사람" 인터뷰에서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띄었다. (출처: http://bit.ly/15iiKM) "소설의 경우 실력이 판가름나는 대목은 대화가 아닌가 싶어요. 전형적인 대화를 갖고 서사를 진행시키려고 들면 긴장감이 저하돼요." 분명 예전에도 본 인터뷰 기사인데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 환절기 증후군에 휩사여 허우적댔던, 길고 긴 열흘이었다. 앞으로 남은 5월, 이제껏 허투루 보낸 시간까지 죄다 끌어모아 알뜰살뜰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뻔한 얘기지만, 한 권의 책보다는 좋아하는 친구와의 대화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

5월 1일 ~ 5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6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9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2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3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4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5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7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18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9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0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1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2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3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4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5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9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0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7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쿳시가 그간의 작품 속에 내재시켜 온 사유 내지는 문제의식을 총결산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편소설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읽는 거의 내내, 쿳시 매니아를 위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동시에 쿳시의 소설(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큰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타당한 예는 아니지만, 나만 해도 처음 이 소설을 볼 땐 지금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땐 고작 <추락> 한 편만 본 상태였다.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또한 한 인물(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이 미세하게 모습(설정)을 바꿔가며 각 단편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 방식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각 단편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 상황을 코스텔로라는 인물에 투사하고 다시 그것을 극단적인 쪽으로 밀어붙여, 그것에 대응되거나 적대적인 생각이나 관념, 상황과 힘겨루기를 하게"(299p) 한다. 그리하여 문제에 대한 정답을 유예하며 정답의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애쓰는데, 이러한 소설 속 "끝장 토론"을 보며 내 사고가 풍부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다른 의견들이 두루 존재할 수 있는지 그저 의아하고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대화의 방식에서 도선생의 작품 스타일이 떠올랐지만, 도선생보다는 쿳시가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극단적이고 합리적이며, 주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큰 것 같았다(만 도선생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쿳시는 정말 대화를 잘 구사하는 작가다.


 내 소설 취향에 따르면 이 소설은 별 이의 없이 1위에 랭크되어야 한다. 하지만 고작(?) 7위다. 이 소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무지 때문이다. 내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부분, 아예 지식이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 주노 디아스의 데뷔작이자 단편집 <드라운>을 읽었(지만 단편집이므로 순위 목록에선 제한)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미국 이민자에 대한 자전적 내용 외부에 레이먼드 카버의 향취가 많이 묻어나는 단편들이었다. 그 어떤 작품이라도 작가의 내면이 투영될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어떤 고귀하고 진실된 내용일지언정 작가 자신의 자전적(혹은 고백적) 소설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본 뒤 드문드문 밀려드는 묘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 리스트 1차 목표였던 30위까지는 우선 달성됐다. 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나 기왕 시작한 거 100위까지 목록은 작성하고 계속하든지 그만두든지 해야겠다. (독서 속도로 봐서 꽤 오래 걸릴 듯) 블로그를 옮기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못 느껴(=귀찮아서) 우선 리스트만 특화시킨 채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구글과 통합 이후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대신 다른 컨셉의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었다. 블로그와 트위터의 장점을 잘 조합해서 만든 그런 곳이다. 클릭(강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