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울즈의 일기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에는 많은 수의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되는데,
그중에 그가 좋게 본 작품들(작가들)에 대해서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코멘트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52쪽 /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아주 침착한 객관성. 아주 차가운 시선. 희생당한 자. 그 단조로운 회색의 분위기가 아주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정신으로 밝혀져 있다.
53쪽 / 헤로도토스를 읽고 위로를 얻다. 다른 시대, 다른 풍습, 강력한 상상력의 발휘. 미래가 엄청난 모습으로 다가올 듯한 느낌. / 108쪽 / 헤로도토스. 6개월 만에 독파하다. 아주, 아주 재미있었다.
61쪽 /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깊은 감명을 받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읽어 온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올더스 헉슬리나 에벌린 워보다 훨씬 훌륭하다. / 639쪽 / 우리는 라디오로 <위대한 개츠비>를 들었다. 여전히 완벽한 작품. / 746쪽 /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 <미인과 저주받은 사람>.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아주 비극적인 비전이고, 금세기의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다. 암에 걸린 작가가 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하지만 그 작가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있다.
76쪽 / 프랑수아 비용. 그처럼 문학의 숲에서 독보적인 존재도 없을 것이다!
90쪽 /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을 읽다. 챈들러의 소설은 세련되었고, 독창적이며, 아슬아슬하다.
97쪽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너무나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화적이어서 비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187쪽 / T.S. 엘리엇. 그의 견해를 반박한다는 것은 짜증이 날 정도로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창작의 시금석이다.
331쪽 / 모파상, <미스 해리엇>. 모파상을 읽으면서 무기력의 파도가 나를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리얼리즘이라는 까다로운 테크닉을 모파상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없다. / 487쪽 / 모파상.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을 읽으면 변함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왜 다른 작가들보다 모파상을 더 오래 읽게 될까?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내용이 풍부하고 범위가 넓다.
619쪽 / D.H. 로렌스의 <하얀 공작>. 그의 글쓰기는 때때로 학생의 글처럼 순진해 보인다. 물론 더러 뛰어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기적이 있다. 글쓰기가 순진할 때조차 인물들은 살아 움직인다.
619쪽 / 지드, <테제>. 위대한 소설이다. 지드는 유일한 테세우스다. 거칠고, 우상파괴적이고, 사고하는 사람. / 651쪽 / <배덕자>를 읽다. 걸작이다. 지드는 아주 미묘한 사항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660쪽 / 제인 오스틴. 남자들은 그녀의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유리의 저편에서 여자들과 뚝 떨어진 채 헤엄을 치고 있다. 모든 여자는 유리 종 안에 들어 있고 남자들은 그 밖에 있다. / 704쪽 / <에마>. 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작품인가. 최근에 이렇게 많은 기쁨을 준 소설을 만난 적이 없다. / 709쪽 / <설득>. 이 책의 큰 매력은 해군인 등장인물들과, 제인 오스틴의 도덕 체계가 멋지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 710쪽 / 디킨스가 나쁜 <사람들>의 묘사에 뛰어나다면, 제인은 미덕의 묘사에 뛰어나다. / 723쪽 /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 악의를 다룬 아주 재미있는 작품. 하지만 중심적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소설이다. / <오만과 편견>. 모든 작품 중에서 성적 긴장이 가장 높은 소설. 그런 긴장은 오스틴 소설의 비밀이다. 모든 것에서 성애의 광휘가 빛난다. 전희를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 725쪽 / 제인 오스틴의 <샌디턴>. 오스틴의 작품들 중에서 이것이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된다. / 766쪽 / 디킨스와 새커리의 모든 작품들은 제인 오스틴에 비해 보면, 뽐내는 원숭이와 마카로니 웨스턴에 지나지 않는다.
677쪽 / 디킨스. 그가 묘사하는 세계의 풍성함. 그것은 잘 구워 놓은 거위와 같다. / 683쪽 /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 나는 이 경건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책을 읽었다. / 758쪽 /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위대한 유산>의 제 29장. 이것은 진정으로 뭔가 심오하고 거대한 것을 포착한 획기적인 챕터들 중 하나다. 하나의 원형을 이루는 챕터다.
686쪽 / <베어울프>. 신선한 경험. 단순하고, 빠르고, 난폭하고, 완벽하다. 온 사회가 완벽하게 요약되어 있다. 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697쪽 / 커즌의 <수도원들>. 영어로 발표된 최고의 여행서 6권 중 하나. 그 여섯 권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다. 이 책은 좋은 여행서의 필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여행이 아니라 여행자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724쪽 /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부메랑이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돌아오는 것이다.
733쪽 / 마크 트웨인의 <해외 도보 여행>. 트웨인은 위대한 원천이다.
738쪽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위대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곧 죽어 없어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위대하다. 그것은 작가가 삶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는 뜻이다. 삶의 본질에 도달했다면, 그 작가의 방법은 성공한 것이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문제되지 않는다. 가령 조이스, 울프, 카프카 등을 한번 보라. 금세기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그 어떤 비극적인 연애 사건들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어쩌면 <위대한 개츠비>의 러브스토리가 이에 근접할 것이다.
739쪽 /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여기저기에서 잠깐 글 읽기를 멈추고 왜 이 책이 위대한지 생각해 보았다. 볼테르와 라신은 스탕달의 실질적인 부모다. 한쪽(볼테르)의 아이러니와 지독한 이기주의, 또 다른 쪽(라신)의 웅장함과 형식성. 가장 낭만적인 순간에도 스탕달은 묘사하고 관찰한다.
742쪽 / 그레이엄 그린의 <추악한 미국인>. 그린의 글쓰기가 초라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시적인 분위기의 글쓰기뿐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은 그린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산문 시인들이다. 디포 ㅡ 윌키 콜린스 ㅡ 그린 / 839쪽 / <불타버린 케이스>. 물론 그린의 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힌다. 앞으로 백 년 후인 2061년의 비평가들은 그런 가독성을 별로 높이 쳐주지 않을 것이다. 그린의 소설은 전체적으로 너무 짧고, 피상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린의 소설은 대부분의 현대 소설들보다 열 배는 더 훌륭하다. 하지만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의 수준이 비하면 실패작이다. <불타버린 케이스>는 스케치이지 소설이 아니다.
745쪽 / 나는 최근에 예이츠의 시를 많이 읽었다. 그 눈부신, 늘 뜻밖의 명쾌한 리듬이 목소리.
751쪽 /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 이 소설을 다시 읽고 그 매력에 거듭 빠져 들었다. 이 소설은 왜 대여섯 개의 위대한 영어 소설들 중의 하나인가? / 775쪽 / 낭만파에게는 위대한 소설이 없다. 사실, 낭만파의 가장 위대한 소설은 에밀리 브론티의 것이 유일한데, 그것은 디킨스와 기타 작가들이 <분위기> 창작이 발견된 뒤에 집필된 것이었다. 요컨대, 기술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개발되어 왔든 것이다.
763쪽 /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를 읽었다. 대단히 아름답고 아득히 심오하기 때문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그가 단 한 줄의 시행에 채워 넣는 그 많은 의미들이란!
774쪽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엉성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된 소설. 상징적인 진실, 두드러진 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 심지어 소설 중의 사소한 인물도 상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775쪽 /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 가장 위대한 소설들 중의 하나. 디킨스와 새커리는 이런 수준의 작품에 견주면 얼마나 값싼가!
776쪽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장편소설. 만약 엘리엇이 제인 오스틴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면(물론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지만), 엘리엇의 아이러니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리라. / 778쪽 / <미들마치>. 지금보다 4분의 1 정도를 줄인다면, 훨씬 더 위대해질 수 있는 소설.
803쪽 / 몽테뉴를 다시 읽다. 만약 대학살에서 책 한 권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다음 책은 몽테뉴라고 본다. / 825쪽 / 몽테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이 일기를 써왔지만 나는 몽테뉴에 미치지 못한다. 솔직함이 부족하고, 자기 진실이 부족하고, 몽테뉴적 의미로 "남에게 동의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805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월든>은 <유토피아>나 <캉디드> 수준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몽테뉴의 글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로의 글이 곧 나의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담아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883쪽 / "위대한 정의란 결국 잊어버리는 것이다."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 893쪽 /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주목할 만한 책. 나는 이 책을 말로의 <인간의 조건>과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수준이라고 본다. 잃어버린 세대부터 비트족의 작가들에 이르는 미국 문학의 전통도 이 책이 빚지고 있다. 사르트르의 소설들도 셀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 예리하면서도 신랄한 무능함의 감각. 그것은 내게 <캉디드>를 연상시킨다.
898쪽 /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이것은 1922년 이래 영국의 예술 분야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황무지>, <율리시스>와 동급이다).
907쪽 / 결국 나는 영국 문학보다 프랑스 문학을 더 잘 알고 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거의 모든 소설가들은 과거든 현대든 프랑스 사람입니다(비록 제인 오스틴이 나의 명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영국의 어떤 작가들보다 지드, 카뮈, 심지어 라클로 같은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981쪽 / 허드슨, <녹색의 장원>(1904). <녹색의 장원>은 <로빈슨 크루소> 못지않게 영국적이다. 좋은 작품이다.
991쪽 / 상황이 극단적이고 환상적일수록, 묘사와 대화는 더 현실적(카메라-눈)이고 진지해야 한다. 사례. <로빈슨 크루소>와 <정오의 어둠>. 추론. 상황이 평범할수록, 언어와 대화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사례. <율리시스>와 <댈러웨이 부인>.
1014쪽 / 머독의 <절단된 머리>.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헐뜯지만, 이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1021쪽 / (* 알랭 푸르니에의) <대장 몬>을 처음 읽었다. 크루소처럼 모래사장에서 발자국을 보고, 결국 이 섬에 내가 제일 처음 상륙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상한 체험이었다. <대장 몬>의 모든 행간마다 어른거리는 녹색의 유령은 내가 <마법사>에서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1088쪽 / 하디, <한 쌍의 푸른 눈>. 두 가지 점은 그의 조숙한 천재성을 잘 보여 준다.
1098쪽 / 나는 지금 존 클레어의 작품을 많이 읽고 있다. 오늘날 글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제2 혹은 제3의 존 클레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