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30일 금요일

4월 21일 ~ 4월 3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NEW)

5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6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9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1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2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3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4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5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6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NEW)

17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8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9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0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1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2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4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8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9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


알랭 푸르니에, <대장 몬느>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 겐이치로 형님이 짱이네 멋지네, 라는 소리를 이번 주에만 몇 번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은 아쉽게도 하위권에 랭크. 그의 소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 트위터에서 @gombimbee 님과 겐이치로 형님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내가 그의 작품을 읽으면 디스크 조각모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자 그가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 "뭔가, 잘게 오려진 무수히 많은 색종이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 ㅎ 색깔은 모두 비비드하고, 결국엔 모두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고요. <야구>도, "골때리는" 색종이들이 막 떠다니다가 한곳에 안착하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드는 표현이라 그만 사랑한다고 고백할 뻔했... ( -_-);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4월 11일 ~ 4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NEW)

6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7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9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0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1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NEW)

13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5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8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19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0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1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2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6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7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너무 길어져서 접어둔다.


존 파울즈, <콜렉터>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당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1. 당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당신의 존재 전체를 예술에 쏟아넣어라.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다. G.P.는 그런 예술가를 <창조자>가 아니라고 불렀다.

2. 감정을 분출해서는 안 된다. 하찮은 고정관념 등을 사람들 앞에서 쏟아놓지 말라.

3. 정치적으로는 좌익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염려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4. 항상 창조해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 실천에 관한 말만 지껄이는 것은 그리지도 않은 그림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가장 나쁜 태도이다.

5. 무언가를 깊이 느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된다.

6. 자신이 영국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여라.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의 흉내를 내지 말아라.

7. 그러나 자신의 출신배경과 타협하지 말아라. 당신의 창조작업을 방해하는 과거의 모든 것을 잘라버려야 한다. 당신이 시골 출신이라면 (우리 부모가 시골 사람들을 비웃는 것은 그들의 출신을 속이려는 눈가림에 불과하다.) 시골의 모든 것을 버려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면 당신 속에 있는 노동자 계급적인 요소를 마비시켜 버려야 한다. 다른 계급 출신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계급이란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8. 애국심을 내세운 정치적인 일들을 혐오해야 한다. 정치와 예술과 그밖의 모든 것에서 순수하고 심오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전부 혐오해야 된다. 어리석고 하찮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보고 싶다 하더라도 시시한 영화를 보면 안 되고, 저급한 신문을 읽어서도 안 되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을 듣거나 보지 말아야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잘 활용해야 한다.


ㅡ 존 파울즈, <콜렉터>, 183-184쪽, 장말희 옮김, 영웅출판


2010년 4월 9일 금요일

4월 1일 ~ 4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6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9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0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1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NEW)

13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4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5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16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1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8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9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0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4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5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일) 소설을 번역한 윤혜준 교수의 말처럼, 디포는 "호흡이 길면서도 갑갑하지 않고,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단순화시키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였다. (번역하느라 수고 많았을 것 같다.) 초반에는 그 문체 때문에 읽는 맛이 나고 중반부엔 허구를 사실로 만들고자 분투하는 디포의 수많은 디테일들을 보며 읽는 맛이 나며 후반부는 스토리가 읽을 만하(지만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리얼리티가 떨어졌던 부분은 시간의 흐름과 심리의 흐름이 불일치하다는 점이었다.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굳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섬에 가두어 놓았던 것일까. 28년을 무인도에 살면서 그가 했던 고민과 생각들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다. <로빈슨 크루소>는 정말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 그러니까 "만약 '내'가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사소하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부쳐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학술적인 가치를 제외하자면 아쉽게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마치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이 소설의 덜 다듬어진 부분이 아쉬워서, 현대의 작가들이 이 작품을 패러디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통은 주요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소설 후반부가 돼서야 등장하는 '프라이데이'를 을유문화사판에서는 '금요일이'라고 번역했고 그를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를 '걔'로 통일시켰다. 읽는 도중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얀 마텔은 분명 <파이 이야기>를 쓰며 여러 각도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의식했을 것이다.


+ 나에게 고전이란, 그닥 내 취향도 아니고 썩 재미도 없지만 쉽사리 팔아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인가?



잡담


1. 어제 밤새 인터넷을 하면서 우연히 척 팔라닉의 트윗을 알게 되었는데(당연히 팔로했고(*인터넷으로 트윗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뒤늦게 안 사실인데, 내가 팔로한 누군가의 RT였다)), 오늘 낮에 깨어서 보니 내 타임라인에 그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언급하며 이 책의 리뷰를 링크시켜둔 트윗이 올라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이 있고, 나 역시 얼마 전에 본 작품인데, 이 소설의 재미를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선 중남미 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들이 백과사전적 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었일까. 플로베르나, 허먼 멜빌이나, 줄리언 반즈나, 로베르토 볼라뇨나... 또 누가 있지?) 척 팔라닉의 작품이라고는 <파이트 클럽>만 한 번 본게 전부인데, (물론 소설을 영화화한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 때문에 소설의 존재를 알았지만. 영화는 세 번쯤 본 것 같다.) 어쩐지 다시 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이건 이를테면 존 쿳시를 좋아하는 강영숙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유사하다. 하하. (오로지 소설의 구조적인 면만 봤을 때, 나에겐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과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이 짝패처럼 여겨진다.)

2. 예전에 이런 소문이 있었지. 패션잡지 <맥심>의 편집장으로 신해철이 낙점됐다고. 거기에 신해철이 딱히 부연 언급을 안 해 그저 소문에 그친 줄만 알았는데 소문이 진짜였나보다. 게다가 내가 챙겨보는 허지웅도 그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된 것 같다. 새로운 <맥심>은 5월호부터. 2주쯤 후면 서점에서 볼 수 있겠다. 이로써 4월이 끝나기 전에 봐야 할 잡지가 <르디플> 4월호(3월호를 아직 덜 봐서 구입 못한 상태), <1/n>(오늘 도착할 예정)에 <맥심>까지 하나 더 늘었다.  전격 취소! 

3. <로빈슨 크루소> 후반부에 보면 선장을 배반한 선원들 얘기가 나오는데 (결국 로빈슨 크루소는 배방당한 선장을 도와 그 미지의 섬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고) 이 '선장을 배반한 선원들 얘기'가 여엉 낯이 설지 않다. 배나 바다와 관련된 작품에서라면 어디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딱 꼬집어 어딘가에서 예전에 접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품이었을까...?

4. 베짱이세실님의 트윗에서 최근에 이충걸이 "낭독의 발견"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간만에 밤새는 김에) 찾아봤다. 덩달아 작년 8월경에 이충걸 단독으로 출연한 "낭독의 발견"도 보았다. (중반부부터 장석주도 출연한다.) 아, 세상에 그토록 뽀얀 피부와 미성의 목소리와 소년스러운 장난기를 가지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라니. (대략 3,4년쯤 전에 장승욱 쌤의 <술통> 출간 기념회 술자리에서 이충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멀찌감치에 앉았기에 직접 대화를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야구 점퍼와 캡을 쓰고 청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구어에서조차 꼼꼼하게 단어를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한 단어와 단어를 직조하는 데마저도 세심한 정성을 들이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주절대기 위해 만든 블로그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아무렇게나 주절거리는 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 4권은 전부 부산에 있는데 (내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아마 올 가을이나 겨울쯤에 그의 책을 다시 볼 일이 있을 것 같다.

5. 꿈에 한 30대 중후반쯤 되는 남자가 나왔다. 아버지와 아는 사이 같았는데 나로선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냥 곁에 있다가 별 생각없이 그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나는 정말 나이가 지긋하거나 '선생님'이란 호칭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 외에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데 이상한 일이다.) 헌데 그 남자는 자신을 왜 (친근하게 형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의아해하면서 조금 멋쩍어했다. 아버지께 물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 아는 사이였다면서 그분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집에 전화해서 이런 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어차피 꿈이었다고는 하지만, 꿈에서 깨어서도 그 사람의 이름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뭔가 의미심장... (괜한 의미 부여)


2010년 4월 2일 금요일

존 파울즈가 언급한 작가 혹은 작품


존 파울즈의 일기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에는 많은 수의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되는데,
그중에 그가 좋게 본 작품들(작가들)에 대해서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코멘트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52쪽 /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아주 침착한 객관성. 아주 차가운 시선. 희생당한 자. 그 단조로운 회색의 분위기가 아주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정신으로 밝혀져 있다.

53쪽 / 헤로도토스를 읽고 위로를 얻다. 다른 시대, 다른 풍습, 강력한 상상력의 발휘. 미래가 엄청난 모습으로 다가올 듯한 느낌. / 108쪽 / 헤로도토스. 6개월 만에 독파하다. 아주, 아주 재미있었다.

61쪽 /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깊은 감명을 받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읽어 온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올더스 헉슬리나 에벌린 워보다 훨씬 훌륭하다. / 639쪽 / 우리는 라디오로 <위대한 개츠비>를 들었다. 여전히 완벽한 작품. / 746쪽 /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 <미인과 저주받은 사람>.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아주 비극적인 비전이고, 금세기의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다. 암에 걸린 작가가 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하지만 그 작가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있다.

76쪽 / 프랑수아 비용. 그처럼 문학의 숲에서 독보적인 존재도 없을 것이다!

90쪽 /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을 읽다. 챈들러의 소설은 세련되었고, 독창적이며, 아슬아슬하다.

97쪽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너무나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화적이어서 비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187쪽 / T.S. 엘리엇. 그의 견해를 반박한다는 것은 짜증이 날 정도로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창작의 시금석이다.

331쪽 / 모파상, <미스 해리엇>. 모파상을 읽으면서 무기력의 파도가 나를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리얼리즘이라는 까다로운 테크닉을 모파상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없다. / 487쪽 / 모파상.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을 읽으면 변함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왜 다른 작가들보다 모파상을 더 오래 읽게 될까?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내용이 풍부하고 범위가 넓다.

619쪽 / D.H. 로렌스의 <하얀 공작>. 그의 글쓰기는 때때로 학생의 글처럼 순진해 보인다. 물론 더러 뛰어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기적이 있다. 글쓰기가 순진할 때조차 인물들은 살아 움직인다.

619쪽 / 지드, <테제>. 위대한 소설이다. 지드는 유일한 테세우스다. 거칠고, 우상파괴적이고, 사고하는 사람. / 651쪽 / <배덕자>를 읽다. 걸작이다. 지드는 아주 미묘한 사항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660쪽 / 제인 오스틴. 남자들은 그녀의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유리의 저편에서 여자들과 뚝 떨어진 채 헤엄을 치고 있다. 모든 여자는 유리 종 안에 들어 있고 남자들은 그 밖에 있다. / 704쪽 / <에마>. 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작품인가. 최근에 이렇게 많은 기쁨을 준 소설을 만난 적이 없다. / 709쪽 / <설득>. 이 책의 큰 매력은 해군인 등장인물들과, 제인 오스틴의 도덕 체계가 멋지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 710쪽 / 디킨스가 나쁜 <사람들>의 묘사에 뛰어나다면, 제인은 미덕의 묘사에 뛰어나다. / 723쪽 /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 악의를 다룬 아주 재미있는 작품. 하지만 중심적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소설이다. / <오만과 편견>. 모든 작품 중에서 성적 긴장이 가장 높은 소설. 그런 긴장은 오스틴 소설의 비밀이다. 모든 것에서 성애의 광휘가 빛난다. 전희를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 725쪽 / 제인 오스틴의 <샌디턴>. 오스틴의 작품들 중에서 이것이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된다. / 766쪽 / 디킨스와 새커리의 모든 작품들은 제인 오스틴에 비해 보면, 뽐내는 원숭이와 마카로니 웨스턴에 지나지 않는다.

677쪽 / 디킨스. 그가 묘사하는 세계의 풍성함. 그것은 잘 구워 놓은 거위와 같다. / 683쪽 /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 나는 이 경건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책을 읽었다. / 758쪽 /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위대한 유산>의 제 29장. 이것은 진정으로 뭔가 심오하고 거대한 것을 포착한 획기적인 챕터들 중 하나다. 하나의 원형을 이루는 챕터다.

686쪽 / <베어울프>. 신선한 경험. 단순하고, 빠르고, 난폭하고, 완벽하다. 온 사회가 완벽하게 요약되어 있다. 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697쪽 / 커즌의 <수도원들>. 영어로 발표된 최고의 여행서 6권 중 하나. 그 여섯 권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다. 이 책은 좋은 여행서의 필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여행이 아니라 여행자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724쪽 /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부메랑이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돌아오는 것이다.

733쪽 / 마크 트웨인의 <해외 도보 여행>. 트웨인은 위대한 원천이다.

738쪽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위대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곧 죽어 없어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위대하다. 그것은 작가가 삶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는 뜻이다. 삶의 본질에 도달했다면, 그 작가의 방법은 성공한 것이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문제되지 않는다. 가령 조이스, 울프, 카프카 등을 한번 보라. 금세기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그 어떤 비극적인 연애 사건들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어쩌면 <위대한 개츠비>의 러브스토리가 이에 근접할 것이다.

739쪽 /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여기저기에서 잠깐 글 읽기를 멈추고 왜 이 책이 위대한지 생각해 보았다. 볼테르와 라신은 스탕달의 실질적인 부모다. 한쪽(볼테르)의 아이러니와 지독한 이기주의, 또 다른 쪽(라신)의 웅장함과 형식성. 가장 낭만적인 순간에도 스탕달은 묘사하고 관찰한다.

742쪽 / 그레이엄 그린의 <추악한 미국인>. 그린의 글쓰기가 초라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시적인 분위기의 글쓰기뿐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은 그린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산문 시인들이다. 디포 ㅡ 윌키 콜린스 ㅡ 그린 / 839쪽 / <불타버린 케이스>. 물론 그린의 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힌다. 앞으로 백 년 후인 2061년의 비평가들은 그런 가독성을 별로 높이 쳐주지 않을 것이다. 그린의 소설은 전체적으로 너무 짧고, 피상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린의 소설은 대부분의 현대 소설들보다 열 배는 더 훌륭하다. 하지만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의 수준이 비하면 실패작이다. <불타버린 케이스>는 스케치이지 소설이 아니다.

745쪽 / 나는 최근에 예이츠의 시를 많이 읽었다. 그 눈부신, 늘 뜻밖의 명쾌한 리듬이 목소리.

751쪽 /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 이 소설을 다시 읽고 그 매력에 거듭 빠져 들었다. 이 소설은 왜 대여섯 개의 위대한 영어 소설들 중의 하나인가? / 775쪽 / 낭만파에게는 위대한 소설이 없다. 사실, 낭만파의 가장 위대한 소설은 에밀리 브론티의 것이 유일한데, 그것은 디킨스와 기타 작가들이 <분위기> 창작이 발견된 뒤에 집필된 것이었다. 요컨대, 기술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개발되어 왔든 것이다.

763쪽 /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를 읽었다. 대단히 아름답고 아득히 심오하기 때문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그가 단 한 줄의 시행에 채워 넣는 그 많은 의미들이란!

774쪽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엉성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된 소설. 상징적인 진실, 두드러진 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 심지어 소설 중의 사소한 인물도 상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775쪽 /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 가장 위대한 소설들 중의 하나. 디킨스와 새커리는 이런 수준의 작품에 견주면 얼마나 값싼가!

776쪽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장편소설. 만약 엘리엇이 제인 오스틴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면(물론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지만), 엘리엇의 아이러니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리라. / 778쪽 / <미들마치>. 지금보다 4분의 1 정도를 줄인다면, 훨씬 더 위대해질 수 있는 소설.

803쪽 / 몽테뉴를 다시 읽다. 만약 대학살에서 책 한 권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다음 책은 몽테뉴라고 본다. / 825쪽 / 몽테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이 일기를 써왔지만 나는 몽테뉴에 미치지 못한다. 솔직함이 부족하고, 자기 진실이 부족하고, 몽테뉴적 의미로 "남에게 동의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805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월든>은 <유토피아>나 <캉디드> 수준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몽테뉴의 글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로의 글이 곧 나의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담아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883쪽 / "위대한 정의란 결국 잊어버리는 것이다."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 893쪽 /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주목할 만한 책. 나는 이 책을 말로의 <인간의 조건>과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수준이라고 본다. 잃어버린 세대부터 비트족의 작가들에 이르는 미국 문학의 전통도 이 책이 빚지고 있다. 사르트르의 소설들도 셀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 예리하면서도 신랄한 무능함의 감각. 그것은 내게 <캉디드>를 연상시킨다.

898쪽 /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이것은 1922년 이래 영국의 예술 분야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황무지>, <율리시스>와 동급이다).

907쪽 / 결국 나는 영국 문학보다 프랑스 문학을 더 잘 알고 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거의 모든 소설가들은 과거든 현대든 프랑스 사람입니다(비록 제인 오스틴이 나의 명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영국의 어떤 작가들보다 지드, 카뮈, 심지어 라클로 같은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981쪽 / 허드슨, <녹색의 장원>(1904). <녹색의 장원>은 <로빈슨 크루소> 못지않게 영국적이다. 좋은 작품이다.

991쪽 / 상황이 극단적이고 환상적일수록, 묘사와 대화는 더 현실적(카메라-눈)이고 진지해야 한다. 사례. <로빈슨 크루소>와 <정오의 어둠>. 추론. 상황이 평범할수록, 언어와 대화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사례. <율리시스>와 <댈러웨이 부인>.

1014쪽 / 머독의 <절단된 머리>.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헐뜯지만, 이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1021쪽 / (* 알랭 푸르니에의) <대장 몬>을 처음 읽었다. 크루소처럼 모래사장에서 발자국을 보고, 결국 이 섬에 내가 제일 처음 상륙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상한 체험이었다. <대장 몬>의 모든 행간마다 어른거리는 녹색의 유령은 내가 <마법사>에서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1088쪽 / 하디, <한 쌍의 푸른 눈>. 두 가지 점은 그의 조숙한 천재성을 잘 보여 준다.

1098쪽 / 나는 지금 존 클레어의 작품을 많이 읽고 있다. 오늘날 글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제2 혹은 제3의 존 클레어인 것이다.


시점에 대한 견해


 일인칭 글쓰기. 이것 이외의 소설 창작 기법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일인칭 글쓰기가 일종의 비겁한 태도인 듯하다. 언젠가 삼인칭 서술로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나는 늘 삼인칭 서술을 구식의 비현실적 서술 방법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그런 생각에 좀 의구심이 든다. 삼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ㅡ 존 파울즈


 (이 작가가 얼마나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불가피한 허세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따르는 무책임함을 결벽하게 꺼리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의 화자가 편집자와 비슷해요. 1인칭 화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눈을 통해 어떤 사건을 서술하죠. 그 방식이 아니면 저로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흔히 한국소설의 문제점으로 3인칭 시점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많이 지적하는데, 제겐 그렇게 쓰면 안된다는 오래된 생각이 있어요. 약간은 윤리적인. ㅡ 김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