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2)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NEW)
15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6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일) <암병동>은, 신선하거나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잘만 다루면 꽤 매력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구조로 쓰인 소설이다. (세군의 말에 의하면 이와 유사한 소설로 카뮈의 <페스트>가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봐야겠다.) 굳이 이 소설의 특징을 다른 소설과 비교해보자면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과 할 수 있겠는데, <암병동>이 공시적인 측면에서 암병동 내의 사람들 개개인을 통해 당대의 러시아를 보여주고 있다면, <드리나 강의 다리>는 통시적인 관점으로 드리나 강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발칸 반도 400년 역사를 가로지른다. (너무 억지스럽군;)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고리키(밑바닥)에서 시작되어 솔제니친(수용소)에서 끝났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주의'로 소설이나 작가를 판단하는 건 간편한 동시에 안일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러시아인이었다면, 혹은 20세기 러시아에 대해서 잘 아는 독자였다면 이 소설이 재미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겨우 다 읽었다.
(10일) 최수연이 옮겨 열림원들에서 출간된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를 읽다가 2장까지 보고 덮어버렸다.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만한 처지(입장/주제)가 못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28페이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좀 너무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늘날 널리 무시당하고 있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라는 교리를 확증하려는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원시적이고 때묻지 않은 덕목들이 누구든 문명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는 어떤 사람을 특별히 특징짓는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덕목들의 관습이나 인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습이나 인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ㅡ실로 마치 카인의 도시와 도시화된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이 시대로부터 예외적으로 대물림된 것ㅡ으로 나타나리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문장이 단 한 문장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내 한국어 독해력에 대해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29페이지에 있는 다음의 짧은 구절은 또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멋쟁이 선원은 어디에서든 찾아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 못지않게 대단한 남성미를 갖고 있었지만," 남성미가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지. 한국어를 읽는 데 자괴감이 느껴져 이럴 바엔 아예 원서를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번역자가 이 소설을 번역하며 독자들에게 실제로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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