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프다. 진작 안 자고 왜 이 시간에 배고프다 투덜대는 거냐. 난 언제쯤 1시 전에 잠잘 수 있을까. 블로그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끼적대고 싶었으나 고작 한다는 말이... 거의 한 이 주째 한 시 전에 잠자는 데 실패하는데, 이게 전부 책 때문이고 인터넷 때문이다. 저녁 먹고 서점에서 <씨네21>에 실린 천명관 인터뷰를 후다다다닥 봤는데 마지막 천명관의 대답에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나와 너무 반가웠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읽은 지 벌써 2년이나 됐다. 아래는 2년 전에 휘갈긴 흔적.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관련된 횡설수설
(드디어)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보급판)를 보았다. 이 소설은 내가 얼마나 소설에 친숙해졌는가를 가늠하게 해준다. 처음 이 소설을 보다가 만 4년 전보다는 확실히 친숙해졌다. 이 소설은 플로베르에 대한 "인간적이고 깊이 있는 이해를 훌쩍 뛰어넘어 독자들에게 소설이라는 예술장르를 읽을 때 펼쳐지는 감정의 모든 양상을 재인식하게" 함은 물론 "문학 비평이나 문학적 상상력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좋은 문학 수업이 될 것"이다. 더불어, 플로베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면 좋을 듯. <마담 보바리>를 재미있게 보지 않았더라도 플로베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장 볼 것. (특히 '10. 기소' 챕터는!)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에 관심 있는 사람 또한 봐두어야 한다. 물론 줄리언 반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봤을 것이고... 소설 보면서 하고 싶었던 말들은 다 어디 가고 이런 이상한 얘기만 늘어놓게 되어 머쓱한데 그래서 인상적인 몇 부분 발췌.
"엘렌. 나의 아내. 죽은 지 백 년 되는 어느 외국 작가(*플로베르)에 대해서 이해한 것보다도 더 이해하지 못한 사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 정상인가? 책은 그녀가 이러저러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삶은 그녀가 한 행동만 말한다. 책은 일어난 일을 설명해 주는 곳이고, 삶은 설명이 없는 곳이다. 삶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놀라지 않는다. 책은 삶을 의미 있게 한다. 유일한 문제는 책이 의미를 부여하는 삶은 당신 자신의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삶이라는 점이다."(209p) -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목, 이지만 소설을 읽지 않으면 잘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을 듯.
"1) 아실-클레오파 플로베르는 그의 둘째 아들과 논쟁을 하다가, 아들에게 문학은 무엇을 위한 것이냐고 물었다. 귀스타브는 외과의사인 아버지에게 질문으로 응수하면서, 그럼 비장(脾臟)은 무엇을 위해 있는 것이냐 되묻고는, <아버지가 그것에 관해 모르시듯 저 역시 모릅니다. 다만 비장이 우리의 몸에 필수적이듯, 시(詩)도 우리의 정신에 필수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고 했다. 의사 플로베르가 졌다.
2) 비장은 임파성 조직(또는 백수질)과 혈관망(또는 적수질)의 단위들로 구성되어 있다. 비장은 수명이 다됐거나, 상처받은 적혈구를 핏속에서 제거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비장은 항체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는데, 비장을 적출당한 사람은 항체 생산이 감소된다. 터프친tuftsin이라고 불리는 테트라펩타이드는 비장 속에서 만들어진 단백질에서 나온다는 증거가 있다. 특히 어린 시절에 비장을 제거하면 뇌막염이나 패혈증에 걸릴 확률이 높지만, 오늘날에는 더 이상 비장을 필수 기관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 이유는 비장을 적출당하더라도 인간의 활동 기능이 크게 손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사실에서 당신은 어떤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가?"(217p) - 플로베르의 멘트를 빌려 문학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도대체 이토록 precise한 비유라니.
"플로베르는 달랐다. 그는 문체를 믿었다. 어느 누구보다 그랬다. 그는 아름다움과 음향과 정확함, 그리고 완벽함을 달성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했다. 그러나 와일드와 같은 작가들이 취한 도안식(圖案式) 완벽함을 위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문체는 주제가 끌고 온다. 문체가 주제에 얹히는 것이 아니라, 주제에서 발생한다. 문체는 사고의 정확한 반영이다. 정확한 단어, 분명한 어구, 완전한 문장은 항상 <저쪽> 어딘가에 있다. 작가의 임무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여 그것을 찾는 일이다." (109p) - 이건 플로베르를 말해주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다시 보고 싶은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보는 시간은 늘 한정적인데 보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여러 모로 속상하다. 지금은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보고 있는데 모레쯤이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꺼운 책이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같이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 보는 데 2주나 걸리다니;; 두꺼운 책 보느라 수고했으니 이후 멜빌 형님의 중편을 하나 보고 도선생의 작품으로 들어가야겠다...만 그 사이 맘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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