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30일 화요일

3월 21일 ~ 3월 31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6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9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0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1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2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3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4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 (2)
15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 ] (1)
16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8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9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4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3일) 2주쯤 전에 이렇게 쓸 때만 해도 이렇게 금방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국 다음과 같은 주절거림을 열흘 만에 무시하고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보게 된 건 결국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베짱이세실님의 이 포스팅 때문이었다. 이번에 2년여 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면서 몇 가지 점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어떤 소설을 처음 볼 땐 그 소설의 주제 혹은 소설의 의도에 굉장히 주목하면서 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떤 소설이 좋게 다가왔다면 반드시 한 번 더 봐야한다. 소설에는 주제나 의도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 처음 볼 때 놓쳤던 것들을 다시 볼 때 하나하나 거둬들여야지.) 그밖에 이 소설은 정말 끝내주게 멋진 소설이라는 점과, 소위 진지한 소설을 쓴다는 인간들은 반드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과, 처음 볼 때도 너무 좋아했지만 특히 열 번째 "기소" 챕터는 톡 뜯어내서 들고다니며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다는 점과, 2년 동안 나는 플로베르를 전혀 보지 않았다는 가슴 아픈 자책과... <추락>과 더불어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생겼다는 기분이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30일) 어느덧 네 번씩이나 봤다.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번에는 원서로 봤는데 오스카 파트에 비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편지 파트는 상대적으로 조금 어려운 듯한 느낌을 받았... 윗 문단에서 친구라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이 소설은 내게 친구라기보다는 연인에 가깝다. 그래서 그저 사랑스울 뿐이다. 어쩌겠나, 그래서 이성적인 관점으로 소설을 읽어내는 게 몹시 어렵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소설만이 다룰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하여 소설이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되는 의도를 내포한 소설 정도? 이 소설이 생각 밖으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물론 기법상의 낯섦도 한몫 차지하겠지만) 크게 봤을 때 아들과 아버지에 대해 다룬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이삼십대 여자 독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처럼 인기가 있을 리가 없... (착각인가?)



+ 헌책방에서 마르케스가 쓴 <칠레의 모든 기록>을 구입했다. 칠레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일은 볼라뇨의 소설에 조금 더 다가가는 일이 될 터이고 그건 결국... 그나저나 볼라뇨의 새 번역본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ㅡ 에서


 늦잠을 자는 바람...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존 파울즈의 일기 정리.


(1950년)

80쪽 /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경멸하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안이다.
ㅡ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과의 괴리는 얼마나 큰가. 그러거나 말거나 요새 세상에 진정한 '안전한 길'이란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안전하게 보이는 길에도 얼마나 많은 지뢰들이 묻혀 있는 사회인가.

107쪽 / 어떤 책이든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세 번 정도 읽지 않는 한, 그 책에 대해 섣불리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
ㅡ 음... 두 번도 적다 이거지. 그래, 세 번.

134쪽 / 자신의 인생을 문학 창작의 도구로 삼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믿어야 한다.
ㅡ 서글프지만, 꼭 서글프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1951년)

144쪽 / 앞으로는 더 멋지고 더 세련되게 인생을 표현하는 일에 힘쓰도록 하자. 인생을 발견하려고 하지 말고.
ㅡ 일기든, 소설이든. 어차피 인생이 깊은 바닷속에 묻혀 있는 진주는 아니니까. 그런 게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161쪽 / 나는 글을 너무 많이 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학대다.
ㅡ 얼마나 많이 쓰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166쪽 / 우리는 함께 있으면 나른함과 부드러움이 전신을 감싸 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강력한 공감 같은 것.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얼이 빠졌다 abruti>고 말한다.
ㅡ 이런 감정을 못 느껴본 지가 벌써...

187쪽 / T.S. 엘리엇. 그의 견해를 반박한다는 것은 짜증이 날 정도로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창작의 시금석이다. 스타일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플로베르와 말라르메의 논리적 결론이다.

207쪽 / 나는 한 여자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가 없고, 지금 G를 사랑하는 것처럼 여러 여자를 사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른 여자들을 그녀보다 더 사랑할 수는 있을 것이나 결코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나 자신, 나의 미래, 나의 창조되지 않은 자아를 너무나 사랑해 나 자신을 완벽하게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257쪽 /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가 모두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영역 성서는 뛰어난 천재의 작품이다. 호메로스가 그리스인들을 위한 것이라면 영역 성서는 영국인들을 위한 것이다.
ㅡ 2006년부터 매년 독서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나 4년 연속으로 실패하는 성경 읽기. 올해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 그나저나 한국인들을 위한 텍스트는 무엇이 있을까?

259쪽 / 자신의 상상력을 잘 조직하는 것은 창작으로 가는 핵심적 발걸음이다. 먼저 상상력의 결과물을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것, 새로운 쾌감, 새로운 조망은 그것이 새롭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52년)

331쪽 / 리얼리즘이라는 까다로운 테크닉을 모파상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없다.

347쪽 / 성교는 인생이 한 가지 목적일 뿐, 사랑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는 그런 견해가 거의 정상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377쪽 / 프랑스 사람, 프랑스, 이 나라의 생활 방식, 그 언어에 대한 사랑. 프랑스인은 건전한 자기중심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생활은 균형이 잡혀 있다. 그들은 영성(靈性)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동물성을 인정한다. 그들은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판단하지만 그들에게 아첨을 하거나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황금의 중용(中庸),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계승한 현대인.

381쪽 / 훔치기는 스페인의 국민적 스포츠가 된 듯하다. 이것은 파시즘의 또다른 부산물이다. 위에서 힘으로 통치하니까 밑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ㅡ 비단 20세기 중엽 다른 나라의 일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432쪽 / 말은 통제할 수 있었지만 눈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선을 피하며서 말하는 것이었다.
ㅡ 으아 세상에나!

450쪽 / 나는 이제 독서량을 줄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문학계의 중요 인사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ㅡ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 파울즈가 너무 부럽다. 난 아직 문학계 중요 인사들 중 반의 반도 보지 못했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늦게 태어난 것도 죄가 될 순 없지 하하.


 (역시 일부만 옮겨둔다.) 존 파울즈의 작품이라면 예에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읽다가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절반쯤에서 덮었고, <컬렉터> 절판본을 구해 보긴 했으나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수업 때문에 3년 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다시 봐야 했다. 심지어 발표까지 해야 했는데, 그때도 역시 별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2>를 다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역시 소설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은 보고 말해야... 특히 나처럼 비평적 관점이 부실한 독자라면.

 아래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대한 잡담. 리뷰를 쓴 것도 같은데 찾을 수가 없...;; 역시나 2007년 가을에 썼다. 괄호 안 별표 속 얘기는 당시에 쓴 것이고, 샵 뒤의 얘기는 지금 쓴 것.

펼쳐두기..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에서 몇 부분


73쪽 /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읽고 싶은 책 리스트 보내면 책을 사서 택배로 보내 줄게." (* 구정에 만난 형제들에게 홍지웅이 한 말)
ㅡ 나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 보내면 사서 보내주는 사람 주위에 있으면 좋겠... 내 취미가 책 리스트 만들긴데!

168쪽 / 나는 한국사의 경우, 대부분의 역사는 이미 배운 게 있으니까 감이 있을 테고 결국 사관이나 역사 인식이 문제일 텐데, 그런 것은 강만길 교수의 <고쳐 쓴 한국 현대사> 같은 책들만 꼼꼼하게 읽으면 전체적인 시각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굳이 학회 활동이 필요하겠느냐며 경제사회학회에서 활동하는 게 유익하겠다고 권유했다. (* 한국사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딸에게 홍지웅이 했던 말)
ㅡ 챙겨서 봐야겠다.

319쪽 / 이세욱 씨가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공부할 때인데 교수가 "셰익스피어를 읽어 보려면 위고가 번역한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위고는 실제로는 영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고의 번역본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작가의 의도나 문장의 분위기를 아주 탁월하게 소화한 번역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단다. 나는 이세욱에게 번역에 얽힌 에피소드를 어느 잡지에든 게재했다가 나중에 단행본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이세욱은 그러자고 했다.
ㅡ 우선 셰익스피어를 읽고 내년부터 불어를 다시 공부하고 내후년쯤 위고가 번역한 셰익스피어를 읽어야지. 참, 사람 일이 말처럼 이렇게 착착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군의 말에 의하면 이세욱 번역은 너무너무 좋다는데, 그래서 최근에 만날 때마다 이세욱 얘기를 들었는데, 저 번역 관련 에피소드는 언제쯤 단행본으로?
(안 그래도 존 파울즈와 관련해서도 <태풍>은 좀 꼭 읽어보고 싶은데... <로빈슨 크루소>도 이래저래 다시 봐야 하고. <로빈슨 크루소>와 엮이는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쯤해서 2007년 2학기 때 쓴 <로빈슨 크루소> 관련 과제 일부 첨부.)

뭐 굳이 이런 걸...


407쪽 / "나는 요즈음 소설 창작보다는 외국 문학 번역을 통해서 한국 문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존 파울즈의 소설을 통해서 진정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존 파울즈는 번역하는 데 너무 힘들어서 번역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작년(2003)에 나온 <일기Journals>라도 번역해 보자고 하니까 그건 책을 검토한 뒤에 생각해보잔다. (* 열린책들 권향미 주간이 번역가 김석희에게 소설 쓸 생각 접었냐고 묻자 김석희가 한 대답.
ㅡ이 대목 덕분에 최근 번역 출간된 존 파울즈의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보게 되었고 지금 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김석희가 아니라 번역가 이종인이 번역했다.

506쪽 / (*번역 및 번역자와 관련된 얘기를 몇 마디 하다가) 결국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하는데, 번역자들도 기본적으로는 "자신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세욱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세욱은 그래서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번역학 총서에 번역 이론서보다는 차라리 번역 야사 성격의 책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프랑스에서의 호메로스의 번역, 불경의 번역, 삼국지의 번역 등 오히려 번역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모아 책을 내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ㅡ 왜 이야기만 하고 책은 안 나오는 것임?

583쪽 / (* <희망의 원리>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의 문화를 진단하고 해부한 역작으로 일반적인 사회주의 문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갖추고 있다"고 했고, 조지 스타이너는 "20세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했다.
ㅡ 그렇군!

585쪽 / 창비, 민음사, 문지처럼 (* 요새 제일 잘나가는 문학동네는 5,6년 전만 해도 듣보잡이었음? ㅎㅎ) 문학 잡지도 내면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또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한국 문학은 접었다.
ㅡ 그렇군!

708쪽 / 세 번째 제안. 출판물의 띄어쓰기나, 외래어 표기법 편람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한글 맞춤법 문제는 국어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언어권마다 외래어 표기법도 이견이 있지만 최소한으로 교정 편의상 통일을 하겠다는 거다. 예를 들면 어떤 출판사에서 여섯 권짜리 전집을 내면서 한 출판사의 A, B, C 세 편집자가 두 권씩 교정을 보았는데, 띄어쓰기가 A, B, C가 서로 달라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국가적인 인력 낭비, 시간 낭비다. 출판사의 주간이나 편집장들이 모여서 서로 세미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서 "통일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국립국어원이나 관련 단체와 공동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표준화시켜 갈 필요가 있다. SBI에서는 앞으로 교정 표준화 작업 외에도 이를 토대로 시험제도도 만들고 전문가도 양성할 예정인데 적극 도와달라."
ㅡ 우리나라에선 특히 책 만드는 데 드는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출판사별로 편집 매뉴얼이 다른 건 당연하거니와, 실제로 책임편집자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출판사임에도 미세하게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진짜, "통일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언제쯤이나 실현이 가능할지.


표시해둔 곳은 이보다 좀 더 되는데 이 정도만 옮겨둔다. 이밖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김연경이 고골 전집을 열린책들에서 내기로 했다는 (아마도 구두의) 계획. 헌데 그 이후 번역 출간된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지하로부터의 수기>뿐. 고골 번역 계획은 접힌 건가?

그나저나 뭐랄까, 들리는 홍지웅과 보이는 홍지웅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두 개 다 진짜 홍지웅이겠지 뭐.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3월 11일 ~ 3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3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NEW)
1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 ] (1)
1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7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8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2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3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8일) 마크 해던의 소설을 작년에 보고 다시 봤다. 구문이나 단어가 어렵지 않은 편이라 원서로 봤다. 초반에 느껴지는 에너지를 끝까지 못 살린 듯한 느낌이다. 적당히 가족 모두 해피엔딩, 식으로 끝맺기보다는 좀더 화자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만 그건 뭐 순전히 내 생각이고.


+ 김언수의 <캐비닛>을 보다가 말았다. 처음 보는 소설이라면 무조건 끝까지 보겠지만 두 번째(혹은 그 이상) 보는 소설인데 별 감흥이 없으면 그냥 덮어도 괜찮을 것 같다.

+ 좋든 나쁘든, 고작 한 번 읽고 소설을 판단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존 파울즈의 일기에서


 존 파울즈가 20대 중반이던 시절 만나던 여자가 해준 이야기.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165쪽에 나온다. (제목에 '소설'이 있지만 이건 엄연히 일기다.) 일종의 심리 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강의 양쪽 둑에 다섯 채의 집이 있다. (*책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부연하자면, 강 왼쪽엔 A와 B의 집이, 오른쪽엔 C,D,E의 집이 있다.) 유일한 연결 고리는 나룻배를 운영하는 집인 D이다. E는 여자인데 A와 약혼했다. B는 E를 짝사랑하는 남자다. 어느 날 E는 약혼자 A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D를 찾아갔으나 마침 집에 없다. 그녀는 C를 찾아가서 그의 조언을 구한다 그는 강에 홍수가 나서 위험하니 집에 있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D를 찾아내어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물이 불어난 강을 보더니,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을 모두 내놓는 조건이라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동의한다. 그는 그녀를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주지만, 그녀는 이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E는 A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는 집에 있지 않다. 당황한 그녀는 B의 집으로 가서 좀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B는 그녀를 집 안에 들여놓고 옆에 앉으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에게 옷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그녀를 만지지는 않는다. 그때 A가 B의 집으로 왔다가 약혼녀가 알몸으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화를 내면서 파혼을 선언한다.
 
 당신은 어떤 순서로 이 사람들을 존경하는가? 누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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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주절주절


 국어사전에 대한 중요성을 이제야 깨닫고 업계(?)에선 명성이 자자한 <보리 국어사전>을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 전에 구입했다. 하루에 열 페이지씩 반년간 꾸준히 봐 매년 두 번씩 완독하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그만! ... 그만두어버렸다. 반년 계획은 나에겐 아직 무리다. 고작 한달 계획을 세워도 수 차례 변경하는 인간이 반년은 무슨... 초중등학생을 위한 사전이고는 해도, 거기에 수록된 단어들만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알아도 충분히 좋을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으나, 읽어가는 도중 찾아오는 압도적인 회의감이... 초등학교 학급회의도 싫어할 만큼 회의적인 사고를 싫어함에도 어쩔 수 들이닥치는 그런... 이 사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중학교에 입학한 사촌동생에게 선물로 줄까;)

 
 당분간 한국어로 쓰인 소설을 읽지 않겠다! ... 고는 해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른 몇 가지들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 라고 말은 이렇게 쉽게 내뱉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국 작가의 소설은 외국어로는 볼 수 없으니 예외로 두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을 시간이 온 것인가;) 볼라뇨도 예외. (예외가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 그보다 이 문단이 언제 통째로 사라질지 모르겠;;) 복합적인 의미인데, 소설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쯤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

3월 1일 ~ 3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2)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3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NEW)

15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6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일) <암병동>은, 신선하거나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잘만 다루면 꽤 매력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구조로 쓰인 소설이다. (세군의 말에 의하면 이와 유사한 소설로 카뮈의 <페스트>가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봐야겠다.) 굳이 이 소설의 특징을 다른 소설과 비교해보자면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과 할 수 있겠는데, <암병동>이 공시적인 측면에서 암병동 내의 사람들 개개인을 통해 당대의 러시아를 보여주고 있다면, <드리나 강의 다리>는 통시적인 관점으로 드리나 강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발칸 반도 400년 역사를 가로지른다. (너무 억지스럽군;)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고리키(밑바닥)에서 시작되어 솔제니친(수용소)에서 끝났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주의'로 소설이나 작가를 판단하는 건 간편한 동시에 안일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러시아인이었다면, 혹은 20세기 러시아에 대해서 잘 아는 독자였다면 이 소설이 재미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겨우 다 읽었다.



(10일) 최수연이 옮겨 열림원들에서 출간된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를 읽다가 2장까지 보고 덮어버렸다.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만한 처지(입장/주제)가 못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28페이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좀 너무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늘날 널리 무시당하고 있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라는 교리를 확증하려는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원시적이고 때묻지 않은 덕목들이 누구든 문명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는 어떤 사람을 특별히 특징짓는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덕목들의 관습이나 인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습이나 인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ㅡ실로 마치 카인의 도시와 도시화된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이 시대로부터 예외적으로 대물림된 것ㅡ으로 나타나리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문장이 단 한 문장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내 한국어 독해력에 대해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29페이지에 있는 다음의 짧은 구절은 또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멋쟁이 선원은 어디에서든 찾아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 못지않게 대단한 남성미를 갖고 있었지만," 남성미가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지. 한국어를 읽는 데 자괴감이 느껴져 이럴 바엔 아예 원서를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번역자가 이 소설을 번역하며 독자들에게 실제로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3월 7일 일요일

횡설수설하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배고프다. 진작 안 자고 왜 이 시간에 배고프다 투덜대는 거냐. 난 언제쯤 1시 전에 잠잘 수 있을까. 블로그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끼적대고 싶었으나 고작 한다는 말이... 거의 한 이 주째 한 시 전에 잠자는 데 실패하는데, 이게 전부 책 때문이고 인터넷 때문이다. 저녁 먹고 서점에서 <씨네21>에 실린 천명관 인터뷰를 후다다다닥 봤는데 마지막 천명관의 대답에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나와 너무 반가웠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읽은 지 벌써 2년이나 됐다. 아래는 2년 전에 휘갈긴 흔적.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관련된 횡설수설


 다시 보고 싶은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보는 시간은 늘 한정적인데 보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여러 모로 속상하다. 지금은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보고 있는데 모레쯤이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꺼운 책이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같이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 보는 데 2주나 걸리다니;; 두꺼운 책 보느라 수고했으니 이후 멜빌 형님의 중편을 하나 보고 도선생의 작품으로 들어가야겠다...만 그 사이 맘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