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0일 토요일

돌고 돌아


 다른 두 나라의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보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 쓰는 중국 태생 하진의 <전쟁쓰레기>에 나오는 주인공 중국인과, 한국에서 한국어로 소설 쓰는 한국 태생 김연수의 단편 "뿌넝숴"에 나오는 주인공 중국인은 대단히 비슷한 시기에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만 시기상 만났을 가망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소설은 그런 추측들이 쌓이고 쌓여 탄생하는 거겠지.

 미루고 미뤄왔던 하진의 <전쟁쓰레기>를 (처음 접한 지 3년 만에 드디어) 읽을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 번역본이 나오기 전인 2007년 번역 수업 시간에 처음 접하게 됐는데(물론 당시엔 삼분의 일 정도밖에 보지 못했고), 거제 포로수용소 얘기도 있고 해서 당장 좀 읽어볼 예정.

 뜬금없는 얘기기는 하지만, 2년 전까지 김연수의 골수팬으로서, 지금까지 김연수 최고의 작품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고 생각한다. (올해 내로 다시 읽어봐야지.)

 김연수의 번역본 중에 하진이 쓴 <기다림>이 있어서 하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하진이 쓴 작품 대부분을 왕은철이 번역하여 왕은철이라는 번역가(겸 교수)를 알게 되었으며 왕은철이 번역한 작품을 찾아 읽다가 쿳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돌고 도는 거지.


 작년에 한국에 출간된 소설 중 기대중인 작품들을 당장(신간으로) 사지는 못하고 목록만 만들어뒀는데 온라인 헌책방을 뒤적이다가 그중 세 권을 발견하여 구입했다. 오로지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여러분 책장에 꽂혀 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옆자리를 좀 비워놓으시라"는 추천사 때문에 사샤 스타니시치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몇몇 리뷰들에서 받은 인상만으로, 그러니까 순전히 감으로 토마스 브루시히의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물론 이 소설 세 편 다 내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는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읽힐지는 모를(그러나 반드시 읽힐), 현재로선 그런 처지.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가 헌책방 사정상 값작스레 사라진 바람에 못 와서 좀 아쉬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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