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7일 수요일
볼라뇨를 읽으며
볼라뇨는, 문학이라는 카테고리 내에 담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소설이라는 장르가 지닐 수 있는 가장 최대치의 개념으로 담아내고자 애쓴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고작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과 <칠레의 밤> 두 개밖에 보지 못했지만... 소설을 내용과 형식으로, (두부 말고) 떡 자르듯이 깔끔하게 잘라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굳이 그렇게 해보자면, 개인적으로 볼라뇨 소설의 내용은 어려웠고 형식은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상식 혹은 교양 내지는 문학(학문)의 차원에서 해설을 필요로 하는 소설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볼라뇨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니 어쩐지 소설을 탓하기보단 내 무지를 탓하게 된다. 그가 소설에서 '이야기'라는 요소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아서, 아니, 어쩌면 내 오독이겠지만, 심지어는 자꾸만 그것을 지우려는 것처럼 보여서 좋았다. 그래서 멋지고 준수한 '소설에 관한 글'들이 볼라뇨의 소설에 대해 말하려고 해봤자 소설의 핵심에는 다다르지 못한 채 그 주변부만 뱅글뱅글 돌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칠레의 밤> 말미에 있는 "옮긴이의 말"이나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에 실린 <칠레의 밤> 서평 세 편을 읽어봤자 내 가려운 등은 긁을 수가 없었다. 아, 간지러워라. 간지러운 사람이 등을 긁어야지 뭐. 그나저나 한국에서 볼라뇨가 얼마나 먹힐까. 대표작이라는 <야만스러운 탐정들>이나 <2666>을 접해보지 못해 알 수 없지만, 쿳시도 모호(?)하다는 이유로 안 먹히는 판에 볼라뇨가 과연 먹힐 수 있을까. 볼라뇨가 쿳시보다 몇 배는 모호하게 느껴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앞으로 볼라뇨의 책들은 꾸준히 출간될 예정이니 다음에 출간될 책을 기다려야지.
<칠레의 밤> 119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 전개, 뭐랄까, 되게 막 신난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것을 이런 데서 깨닫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렇네요, 내가 성자처럼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장군이 내게 말했다. 내가 책을 몇 권 썼는지 아시오? 저는 일순 얼어붙어 버렸습니다. 내가 페어웰에게 말했다. 전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서너 권 썼지, 페어웰이 확신에 차 말했다. 어쨌든 저는 몰랐기 때문에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세 권이오, 장군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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