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29일 금요일

1월 21일 ~ 1월 30일


1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2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3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4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5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NEW)

6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NEW)

7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8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9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0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1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1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15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NEW)


(21일) 1994년에 신영출판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판으로 <아홉 시 반의 당구>를 다시 보았다. (책에는 하인리히 뵐의 <아홉 시 반의 당구>, <뇌성의 골짜기>, 아스투리아스의 <강풍>이 실려 있다.) 소설에선 수시로 화자가 바뀌고 시점이 바뀐다. 배경도 소설 속 현재인 1958년 9월 6일을 중심으로 그 이전 오륙십 년 전까지 현재와 과거를 무규칙적으로 왔다갔다 한다. 우선은 이런 형태적인 특징 때문에 쉽게 안 읽힐 소설이다. (그러니 발췌본으로 보면 이해가 더욱 안 되겠지.) 더군다나 밥 먹듯 등장하는 (종교적인) 상징과 은유, 그리고 독일 역사에 대한 상식의 부재 등으로 나에겐 그저 어렵고 재미없는 소설이 되어버렸다(고는 해도 여기저기서 해설이나 논문을 훑어봤기 때문에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대강은 알고 있다ㅡ는 소리는 도대체 왜 하고 있는 건지.hwp 내가 읽은 게 읽은 게 아니야.mp3).


(24일) 일 때문에 보게 된 에밀 졸라의 <쟁탈전>. 96년에 고려원에서 나온 적이 있는데, 아마 조만간 다른 출판사에서 같은 역자로 다시 출간될 것 같다. 번역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다만(쩝),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고발한다>나 <실험 소설론>만 훑어보았지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에밀 졸라의 소설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소설을 읽고나니 요즈음 소설들의 묘사가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었다. 훌륭한 묘사는 '어느 정도' 서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소설을 보고 알게 되었다. (단순히 미사여구만으로 묘사가 서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아니다.)


(28일) 출간됐을 즈음 인터넷에서 보고 잠시 관심을 가졌다가 이내 사라졌는데, 얼마 전에 헌책방에서 눈에 띄어 집어들게 되었다. 미국작가가 쓴 '일본소설'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소설이었다. (여기서 '일본소설'은 요 몇 년 간 한국에서 많이 출간되는 요즈음의 일본 소설을 의미함) 조금은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초현실적이지는 않은 그런 사건들이, 사실 사건이라기도 뭣한 사소한 일들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전개되는 소설이다. 더불어 뚜렷한 서사도 없고, 기승전결 방식의 이야기도 아니라 조금은 지루하게 읽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느 순간(나 같은 경우엔 책을 절반쯤 봤을 때) 책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제법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는데, 나로선 그런 사실 자체가 꽤 흥미로웠다. 이 소설은 요새 한국에서 유행하는 소설들처럼 빤한 감동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위로를 주는 데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어떤 유용한 점이라면, 결국 그건 이 책의 제목과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인데, 번역자가 "옮긴이의 말"에 적어두었듯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때로는 불안이 아니라 안도감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그걸 실제로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겠지만.


1. 하인리히 뵐의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다가 수시로 덤벼드는 잠을 어쩌지 못하고, 아, 아직 때가 아닌가보다 하는 마음으로 덮었다.
 
2. <토요일>은 너무너무 훌륭한 소설이며, <드 니로의 게임> 역시 문학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작품이만, 지금 이 리스트가 내 취향대로 순위를 매기는 리스트라는 사실을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세군에게 받은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를 보다가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물론 포어의 소설 역시 내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많은 부분에서 유사하다.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엽편소설


 bmp파일을 jpg파일로 바꾸는 통에 이미지가 좀 흐릿해지긴 했지만...

 <판타스틱> 2010년 2월호에 실린 엽편소설이다.
 원고지 한 장 분량에 맞춰 쓰느라 낑낑댔는데 아무튼 책에 실리니 기분 좋다.


검은 양

 
 아주 오랜 옛날, 멀고 먼 어느 나라에 검은 색을 띤 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총살을 당하고 말았지요.
 한 세기가 지난 후, 양의 무리는 그 일을 참회하는 의미로 그 검은 양의 기마상(騎馬像)을 공원에 세웠는데, 아주 근사하게 잘 어울렸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검은 색을 띤 양이 나타날 때마다 재빨리 총살형에 처해졌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후세의 평범한 흰 양들이 조각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ㅡ 아우구스토 몬테로소, <검은 양과 또 다른 우화들> 中

 아우구소토 몬테로소라는 작가의 "검은양"이라는 '초단편소설'이다. 소름 돋았다. 뭔가, '초단편소설' 내지는 '엽편소설'의 본보기가 아닌가 싶다.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모비 딕


 늘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새로운 번역본이 나오길 기다렸는데, 작가정신 출판사에서 김석희 번역으로 25일에 새 번역본이 출간될 예정이다. 이미지는 이미 온라인 서점에 떴다. 이 책은 프랑스에서 기획한 시리즈에 속한 그림이 있는 책인데, 무엇보다 무척이나 비싸다. 완역인지 어떤지 모르겠으니 대형서점에 가서 확인해 보고 싶다, 만 언제 나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직 창비에서 나온 문학전집도 실물 확인을 못 해봤는데 흐음. 민음사든 문학동네든, 다른 세계문학 작품도 좋지만 우선 <모비 딕> 번역이나 쫌 하시지들.


2010년 1월 22일 금요일

김중혁 曰


"남의 책 운운할 때가 아니다. 2010년 초반까지 출판사에 장편소설 원고를 넘기지 못하면 이미 바닥까지 추락한 나의 신뢰도는 지하실 세계로 진입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출판사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형편없는 원고를 최대한 빨리 드릴까요, 아니면 훌륭한 원고를 천천히 드릴까요?”라는 (이거 뭐 내가 금도끼 은도끼 나눠주는 산신령도 아니면서) 협박으로 일관하던 나였지만 이제는 막다른 골목에 선 느낌이다. 뭐라도 토해내야 할 판이다. 그리하여, 2010년에 가장 보고 싶은 소설책은 김중혁씨의 장편소설이다. 누군가 2010년에 꼭 만나고 싶은 소설로 나의 첫 장편소설을 꼽는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딘가 그런 사람이 있겠지. 어딘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고통을 안다.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설을 기다리는 것만큼 지루한 일이 없다. 도대체 뭘 하느라 책이 안 나오는 것인지, 소설을 쓰고 있기나 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으니 답답하다. 나에게도 늘 새로운 작품이 기다려지는 소설가가 있다. 여러 명이다. 그들의 신간이 나오길 기다리면서, 한편으로는 그들의 장점을 모두 합한 새로운 소설가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폴 오스터의 소설처럼 이야기가 시작되고, 지넷 윈터슨이나 제이디 스미스의 소설 속 유머를 구사하는 주인공이 코맥 매카시의 소설 같은 상황을 맞이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쿨하게 웃어넘기다가 미셸 우엘벡의 소설보다 더 당황스러운 결말을 맞이하는 소설을 만나고 싶다. 만약 그런 작가를 발견한다면 즐겁기도 하겠지만 매년 그의 신작을 기다리느라 또 괴로움이 추가되겠지. 그래도 기쁜 괴로움이다."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6603.html (여기서 발췌)


 이런 글을 읽고 나니 김중혁의 소설을 아니 기다릴 수 없다. (편혜영 장편도 쵸큼 기대중) 더불어 폴 오스터+지넷 윈터슨+제이디 스미스+코맥 매카시+무라카미 하루키+미셸 우엘벡 같은 소설도 어디 한번... 김중혁의 입장과는 많이 다르지만, 무엇보다 나 역시 앞으로 내가 쓸 소설들을 무척이나 기다리고 있다. 어쨌거나 쓰다 만 몇 편의 내 소설들에는 각기 때가 있는 것 같으니, 나는 뜨거운 물에 조용히 앉은 채 머릿속에서 끝내주는 이야기들을 구상하며 때를 불리고 있는 수밖에...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1월 11일 ~ 1월 20일

 
1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NEW)
2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NEW)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4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5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8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1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1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 (1) (NEW)


(11일에 씀) 1위가 바뀔 때도 됐다. 라위 하지라는 낯선 작가의 데뷔작 <드 니로의 게임>은 2008년에 "임팩 더블린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내가 이 소설을 주목한 건 함께 후보에 올랐던 작가들 때문이었다. 필립 로스, 토머스 핀천, 폴 오스터, 이사벨 아옌데, 존 업다이크, 코맥 매카시 등. 얘네들을 다 제쳤다니... 그리고 읽어보니 과연, 21세기에도 이런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축복이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와 장르가 판을 치는 한국 소설 세계에서, 이런 팔리지도 않을 낯선 세계의 '불편한' 소설을 펴내준 출판사에 고마울 따름이랄까. 이 소설은 성장소설이고 전쟁소설이며 레바논소설이고 리얼리즘+모더니즘+미니멀리즘 소설이지만 동시에 이런 분류가 아무 짝에도 필요없는 그냥 소설이다. 번역은 정말 출중하다는 느낌이 들었고(다른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번역된 글을 읽어보면 역자가 한국어 글쓰기에 얼마만큼 관심이 있는지 대강은 짐작할 수 있다), <디어 헌터>와 <바시르와 왈츠를>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목이 주인공의 친구 별명을 따서 "드 니로의 게임"인 건 여러 가지 의미에서 정말 잔인하고도 서글픈 일이다. 


 

(15일에 씀) 라위 하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을 읽는 동안 <드 니로의 게임> 속 매력들은 다 사라지고 말았다. <토요일>을 읽으며 "와아, 진짜 잘 쓴다"는 탄복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조금 달린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책 뒤표지 추천 코멘트를 빌려 말자면 <토요일>은 "현대 문학의 중요한 사건"이며 21세기 "리얼리즘의 새로운 경지"다. "근대문학의 종언" 이후, 혹은 근대문학의 세계에서 벗어나고 있는 (벗어날 수밖에 없는) 소설이, 장르적 효과나 마술적 서사에 기대지 않은 채 현대를 어떻게 문학적으로 그릴 수 있는지 혹은 그려야만 하는지, 한 사례를 제시한 것 같다. 작년에 읽었던 <속죄>나 <체실 비치에서>를 다시 읽어봐야겠다. 아니, 기왕이면 올해 안에 이언 매큐언의 작품들을 주욱 훑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18일에 씀) 김연수로 검색하면 나오는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겉표지 사진 때문에 하인리히 뵐이 여자 작가인 줄 알았...; 사지원의 번역으로 지만지에서 나온 70퍼센트 발췌본을 봤는데, 세상에 이렇게 집중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고 어려운 소설은 오랜만이다. 중고책 사이트에서 신원문화사에서 20여 년 전에 출간된 번역본을 주문했는데, 이번 주 내로 다시 봐야겠...다가 아니라 다시 봐야 한다. (19일에 씀) 어제 주문한 뵐의 책이 세 권 도착했다.  <아홉 시 반의 당구>를 비롯하여, <뇌성의 골짜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담아, 너는 어디 있었느냐?>, <어느 공용 외출의 끝>, <여인과 군상>이 실려 있다. 며칠 전까지 작가의 성별도 몰랐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다. 하하하.


 

 소설 특성 때문인지, 겐이치로 형님의 소설은 시간이 갈수록 자꾸 순위가 떨어져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 내용이 전혀 기억 나지 않으니 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이언 매큐언, <토요일> 中


 로설린드(*아내)와 사랑을 나누는 것에 싫증이 난 적이 없거니와, 의사라는 직위에 통용되는 관대한 논리를 이용해 한눈팔 기회가 도처에 널렸음에도 심각하게 유혹당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자면, 아니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변태에 속한다. 그(*남자주인공)는 섹스를 생각하면 로설린드를 떠올린다. 이 눈, 이 가슴, 이 혀, 이 사람의 반겨주는 손길을. 어떤 다른 여자가 굳이 그를 사랑할 것이며, 어떤 다른 여자가 그에게 그런 따뜻함과 빈정거리는 유머를 선사할 것이요, 어떤 다른 여자와 그토록 풍부한 과거를 함께 쌓아갈 수 있었을까? 한평생 사랑이 사람을 그토록 자유롭게 해줄 수 있다는 걸 가르쳐줄 여자는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그가 가진 재주를 모두 발휘하여 그처럼 거리낌 없이 탐닉할 수 있는 여자도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성격 탓인지 그는 성적으로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한 것에서 더 자극받는다. 그는 자기 안에 뭔가 마비나 결핍된 것이 있어 소심한 것이리라 짐작한다. 남자 친구들 중 상당수가 나이 어린 여자들과의 모험 속으로 슬그머니 빠져들며, 때로는 탄탄하던 결혼 생활이 맞고소로 이어지는 파경을 맞기도 한다. 퍼론은 자기 안에 남성적 생명력이 없는 것은 아닌지,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과감하고 건강한 욕구가 없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불편한 심정으로 허공을 빤히 바라본다. 호기심은 다 어디 간 거야? 저 사람, 뭐가 잘못된 거지? 차분하고 온화한 미소를 지닌 한 매력적인 여자가 그에게 이따금씩 이런 의아한 눈길을 보낸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이 정절은 미덕으로 보일 수도, 완고함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아무런 선택도 하지 않기에 어느 쪽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야 하는 것은 소유, 소속감, 반복, 이런 것이다. // (73~75p)


 이 구절을 메신저의 한 아이에게 보여줬더니 대번에 저런 남자가 현실에 있을까, 한다. 그녀의 요지였다. 내 요지는 저런 남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의사라는 직위를 갖진 못하겠지만) 각자의 요지를 가지고 잠시 옥신각신했는데, 결국 각자의 요지를 확인하면서 끝을 냈다. 누구 말대로, 천성대로 살면서 자신의 천성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걸까, 아니면 반대로, 천성대로 살지 않았기에 자신의 천성에 대해서 알게 되는 걸까. 


2010년 1월 10일 일요일

1월 1일 ~ 1월 10일


 1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_[091206] (3)
 2위. 김사과, <미나>_[091216] (1)

 3위. J.M. 쿳시, <어둠의 땅>_[100110] (1)

 4위. 천명관, <고래>_[091203] (2)

 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_[091221] (2) 

 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_[091214](2)
 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_[091209] (2)
 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_[091208] (2)

 9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_[091229] (1)

 10위. 코맥 매카시, <로드>_[100108] (2)



 미안해 매카시 형. 형의 소설을 참 좋아하지만 정영목의 번역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어. 이 책으로 그가 유영번역상인가 무슨 상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아마 그 상 심사위원들은 원서대조를 해보지 않았을 거야. 다른 훌륭한 번역가가 새로 번역하길 기대해야지 뭐. 시인이 번역해주면 금상첨화겠고. 사실 이런 절망적이고 암울한 내용의 소설은 내 취향이 아니야. 소설을 읽는 3일 내내 바깥 날씨가 흐릴 거라고 생각했거든.

 
 쿳시의 데뷔작 <어둠의 땅>. 쿳시의 다른 소설에 비해 모더니즘적 색채가 진하게 나타나 나로선 읽기가 쉽지 않았다. 번역자인 왕은철 교수의 말에 의하면 "쿳시의 소설 중에서 가장 어려운 소설"이기도 하거니와. 이 소설에서 어쩐지 <야만을 기다리며>나 <마이클 K>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이 소설은 두 편의 중편 "베트남 프로젝트"와 "야코부스 쿳시의 이야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전자에선 가해자의 무의식적 죄의식이 어떤 정신분열을 일으키고 결국 어떻게 끔찍한 일을 발생시키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 가해자 역시 국가에 의한 피해자) 정신분열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고, 후자에선 피해자에 가하는 폭력을 합리화하는 가해자에 대해서 (더불어 하나의 역사가 어떤 식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지) 독특한 방식으로 얘기하고 있다.

 굳이 순위를 매겨두긴 했지만, 2위에서 10위까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내 편협한 취향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지는 못한 것 같다.

 오로지 지금 남아 있는 내 기억에 의존하여 순위는 수시로 바뀐다.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를 보다가 말았고, 오슨 스콧 카드의 <엔더의 게임>을 보다가 말았다.



2010년 1월 1일 금요일

12월 22일 ~ 12월 31일


 1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_[091206] (3)
 2위. 김사과, <미나>_[091216] (1)
 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_[091214](2)
 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_[091209] (2)
 5위. 천명관, <고래>_[091203] (2)
 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_[091208] (2)
 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_[091221] (2)
 8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_[091229] (1)

 

 

<창작과 비평>에서 연재한 김연수의 소설. 지루한 느낌 없이 잘 읽히는 소설이다. 간혹 호흡이 안 맞는다는 느낌을 받긴 했지만. 이를테면 좀더 이야기를 써줬으면 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이야기가 중단되거나 줄어드는 경우. 반대의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꼴지에 랭크된 이유는 완성작이 아니라는 것이 전부임.

 

 열흘 동안 술이라면 남부럽지 않게 마셨지만 책은 별로 읽지 못했다.

 관심 신간 소설도 따로 정리해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