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29일 목요일

나도 여기를 떠야지


예전에 하다가 접었던 알라딘 블로그로 다시 옮깁니다.
누추한 블로그를 즐겨 찾았던 분들, 꾸준히 발걸음 해주시길...

http://blog.aladin.co.kr/jmisland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7월 11일 ~ 7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먼 별>(1996)_[100708] (2)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00706] (2)

14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7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8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9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0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21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3위. 윌리엄 백퍼드, <바텍>(1816)_[100713](1)  

2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6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7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_[100620] [100711] (2)

28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9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30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31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2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4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8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9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1일) 로쟈님의 도스토예프스키 강의를 통해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왜 씌었는지 그 속에 담긴 구절들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인지, 더불어 도선생 후기 소설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봐을 때 이 소설의 중요성 등에 대해 듣기는 했으나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다. 2부는 그럭저럭 볼 만했으나 1부는 시종일관 졸렸다. 과대망상에 자의식 과잉의 중2병 캐릭터의 독백을 보는 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그 속에 뜻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을 지라도. 톨스토이를 존경하며 도스토예프스키를 까댔음에도 도선생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보코프는 심지어 1부는 소설도 아니라고 했다고...

(13일) 두어 달쯤 전에 친구가 빌려준 책인데 안 보고 있다가 <먼 별>에 나와있길래 어떤 이야기인가 싶어서 봤다. 이야기로서의, 그러니까 책 뒤표지에 나와 있듯 "프랑스 비평가와 독자들이 선정한 <이상적인 도서관Bibliotheques ideales>의 장서 목록 중에서, '환상과 경이' 부문 베스트 1위를 차지"할 만큼 이야기의 매력은 풍부했지만 소설로서 그리 큰 매력은 못 느꼈다. (아래는 보르헤스가 <바텍>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했던 착각에 대하여)

보르헤스의 글을 읽다가

 
(14일) <먼 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에는 많은 이야기와 작가와 시인과 작품이 등장하는데, 그걸 이용해서 재미있는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 몇 달 후 출간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훌륭한 작가는 유머를 정말 잘 구사한다. 그냥 단순히 하하호호 웃기는 그런 유머 말고.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유머.


+ 얀 마텔의 <셀프>를 읽다가 말았다.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소설 읽기 원칙이라면 (처음 읽는 작품에 한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보자! 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정말 오랫동안 읽힌 고전이 아니라면 굳이 지루함을 견뎌내면서까지 읽고 싶지는 않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접하지 못한 다른 책을 보는 게 낫지. <파이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얀 마텔은 (소설이 품고 있는 에너지의 교류 측면에서) 나랑은 별로 안 맞는 작가인 것 같다.


2010년 7월 9일 금요일

7월 1일 ~ 7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00706]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7위. 로베르토 볼라뇨, <먼 별>(1996)_[100708] (1)

18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9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20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1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2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3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5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6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8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9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30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1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2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3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7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8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6일) 볼라뇨의 <부적>을 다시 봤다. 소설 내용은 여전히 어두침침한 느낌이었지만 화장실 타일 위의 상현달 혹은 하현달의 달빛이 조금은 더 선명해진 것 같다. 2장에서 주인공은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인문대학을 돌며 자발적으로 일을 했는데 이 부분에서 문득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한 인물이 떠올랐다. 처음 볼 땐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았는데 그중 160쪽에 나오는 "안데스 산맥의 식인종 럭비 선수들"에 관련된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보다가 말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보았더니 실제 있었던 일. (다큐멘터리 영화를 포함해) 관련 영화도 두 편이나 있었다. 이제 <먼 별>을 봐야지.

(8일) 볼라뇨의 <먼 별>을 봤다. 이전까지 본 세 편의 작품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읽혔다. 반면 완성도의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살짝 못 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카를로스 비더를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라고 봤을 때 중반부에 나온 후안 스테인과 디에고 소토의 이야기는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 아닌가 싶다. 초반부와 후반부는 범죄소설적 스타일 덕분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옮긴이의 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작가의 "방대하고 탐닉적인 독서광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는 점이었다. 볼라뇨 같은 독서광이 되고 싶다.) 어찌 됐건 이 소설 역시 분량이 적은 편이니 이번 달 내로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6월 21일 ~ 6월 3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 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7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8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9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0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1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3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4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5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6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7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8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9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0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1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2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6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7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30일) 서점에서 <먼 별>과 <부적> 중 무엇을 먼저 볼까 훑어보다가 첫 구절이 인상적이라 <부적>을 먼저 보게 되었다. 바로, "이 이야기는 공포물이다. 탐정 소설, 누아르 소설, 호러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고, 그래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잔혹한 범죄 이야기다."라는 구절. 하지만 이 소설이 "잔혹한 범죄 이야기"라는 점은, 아후벨이 그린 <부적>의 책 표지만큼 선명하게 와 닿지 않았다. 그것은 멕시코(및 라틴 아메리카) 역사(문학사)에 대한 무지 때문일 것이고, 시공을 무시하는 작가의 초현실적인 서사 기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현실과 환상을 엮는 수많은 은유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칠레의 밤>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사실 이 작품은, 장르의 특성상 소설이라 불리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 읽고나면 소설에 대한 감흥보다는 시적인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 소설이다.


+ 매번 택배 이사만 하다가 처음으로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했다. 차를 타고 1년 반 이상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네를 떠나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정든 곳에서 멀어지는 건 늘 아련한 기운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니까 요는, 이사 하느라 책을 거의 못 봤다는 소리. 7월 1일부터는 다시 열독, 열작 모드로 살아야지.



2010년 6월 20일 일요일

6월 11일 ~ 6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0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1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3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4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6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7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8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9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0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1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5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6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2010년 6월 9일 수요일

6월 1일 ~ 6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0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1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3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4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5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6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8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9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4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존 파울즈, <마법사>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



단편들


2010년 5월 29일 토요일

5월 21일 ~ 5월 31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0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2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3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5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6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1일)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은 참 기상천외한 소설이다. 기상천외하다는 점에서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이나 마이조 오타로의 <아수라 걸>이 함께 떠올랐다. 이 소설은 "죽은 술시중꾼만한 술시중꾼이 없기에 그를 찾아 나선 사나이의 이야기"(183p)다. 그런 가운데 '판타지한' 스토리가 연속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판타지 장르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판타지 작품에는 보는 사람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습, 논리, 규칙들이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애시당초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의 얼개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런 이유로 보는 시종일관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낯설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역자가 "작품해설"란에 적어둔 것처럼 "구전 문학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191p)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나 그것이 입담 좋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들에게 구성지게 풀어놓는 투였다면 더욱 좋을 뻔했다.



+열흘 동안 저 (얇은) 책 한 권밖에 못 봤다. 계획대로라면 존 파울즈의 <마법사>도 다 봤어야 하지만 아직 1권도 다 못 본 상태. 어제 밤부터 몸이 안 좋아서 오늘(5/30) 오후까지 계속 자다 깨다 했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 동네 죽집에서 죽을 사왔는데 3분의 1도 못 먹었다. 이렇게 사경을 헤맨 채(응?) 누워 있는 동안 경기지사 심상정 후보가 끝내 사퇴하고 말았다. 내가 비록 경기도민은 아니지만, 괜히 아팠던 게 아닌 것 같다. 기분도 꿀꿀한데 나중에 장원준과 김광현의 선발 맞대결이나 봐야겠다. 이제 오예스 먹으면서 허기 때우며 밤 새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5월이 끝나기 전까지 하려고 했던 일 딱 하나만은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다 싶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대로 인간의 의지만큼 나약한 게 어디 있나 싶다. 그래도 이 약해빠진 의지 하나 믿고 계속 가야지.



2010년 5월 20일 목요일

5월 11일 ~ 5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7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3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6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7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8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19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0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1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2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3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4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5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6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0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1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6일) 존 파울즈는 <만티사>에서 소설을 완벽하게 가지고 논다. 소설을 가지고 노는 수준을 넘어 유머마저 가지고 노는 경지에 이른 것 같다. 은근히 야하면서 동시에 노골적으로 외설적인 1장을 불편 없이 보고 나면, 기존의 소설들에서 접하기 어려운 짜릿한 내용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존 파울즈가 소설 속에서 화자에 대해, 작가에 대해, 그리고 이 둘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물음을 던지고 비판할 수 있었던 건 그가 42년간 써온 일기의 영향 탓이 컸을 것이다.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결국 일기(쓰는 습관)에서 비롯된 것. 소설에서 '대화'는 연극에서의 대화와도 달라야 하고, 일상생활에서의 대화와도 어느 정도의 차별성을 지녀야 한다. 조금 과장해서 말해보면, 처음 접하는 소설을 판별하기 위한 기준으로, 작품 속에서 대화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었는가만 보아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고수들은 소설에서의 대화가 무엇이며 어떤 기능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있고 심지어는 그것을 엄청나게 잘 구사한다. 쿳시가 그렇고 또한 존 파울즈가 그렇다. 후반부, 설명과 의미 부여에 너무 공을 들인 것 같다. 맥락상 필요했다는 생각과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겠다는 생각이 함께 한다. <콜렉터>에 이어 다시 한번 씨익, 미소를 짓게 만드는 소설이다. 마지막으로, 여자독자들이 존 파울즈의 소설(이나 일기)를 읽고 어떤 생각(혹은 감정)을 갖게 될지 궁금하다.



+ 신형철이 정호승의 칼럼을 비판한 아름다운 글(http://bit.ly/ccO8ox)을 읽고나니 더욱 신형철의 글이 읽고 싶어져 여기저기 검색하던 중 <씨네21> "김혜리가 만난 사람" 인터뷰에서 한 구절이 새롭게 눈에 띄었다. (출처: http://bit.ly/15iiKM) "소설의 경우 실력이 판가름나는 대목은 대화가 아닌가 싶어요. 전형적인 대화를 갖고 서사를 진행시키려고 들면 긴장감이 저하돼요." 분명 예전에도 본 인터뷰 기사인데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 환절기 증후군에 휩사여 허우적댔던, 길고 긴 열흘이었다. 앞으로 남은 5월, 이제껏 허투루 보낸 시간까지 죄다 끌어모아 알뜰살뜰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뻔한 얘기지만, 한 권의 책보다는 좋아하는 친구와의 대화가 인생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2010년 5월 9일 일요일

5월 1일 ~ 5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6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9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2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3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4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5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7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18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9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0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1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2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3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4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5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9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0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7일) <엘리자베스 코스텔로>는 쿳시가 그간의 작품 속에 내재시켜 온 사유 내지는 문제의식을 총결산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장편소설 형식을 완전히 벗어나서. 읽는 거의 내내, 쿳시 매니아를 위한 작품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동시에 쿳시의 소설(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보면 큰 매력을 못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타당한 예는 아니지만, 나만 해도 처음 이 소설을 볼 땐 지금처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땐 고작 <추락> 한 편만 본 상태였다.


 이야기가 꾸준히 이어지지 않고 단편적으로 나뉜다는 점에서, 또한 한 인물(작가의 분신이랄 수 있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이 미세하게 모습(설정)을 바꿔가며 각 단편에 지속적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소설의 구성 방식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각 단편에서 작가는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 상황을 코스텔로라는 인물에 투사하고 다시 그것을 극단적인 쪽으로 밀어붙여, 그것에 대응되거나 적대적인 생각이나 관념, 상황과 힘겨루기를 하게"(299p) 한다. 그리하여 문제에 대한 정답을 유예하며 정답의 스펙트럼을 넓히려고 애쓰는데, 이러한 소설 속 "끝장 토론"을 보며 내 사고가 풍부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 인간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이토록 완벽하게 다른 의견들이 두루 존재할 수 있는지 그저 의아하고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대화의 방식에서 도선생의 작품 스타일이 떠올랐지만, 도선생보다는 쿳시가 훨씬 더 간결하면서도 극단적이고 합리적이며, 주제를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큰 것 같았다(만 도선생의 작품을 읽다보면 생각이 또 바뀔지도 모르겠다). 쿳시는 정말 대화를 잘 구사하는 작가다.


 내 소설 취향에 따르면 이 소설은 별 이의 없이 1위에 랭크되어야 한다. 하지만 고작(?) 7위다. 이 소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지 못한 건 전적으로 내 무지 때문이다. 내가 미처 관심을 갖지 못한 부분, 아예 지식이 부족한 부분들이 너무 많아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애로사항이 많았다.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



+ 주노 디아스의 데뷔작이자 단편집 <드라운>을 읽었(지만 단편집이므로 순위 목록에선 제한)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의 미국 이민자에 대한 자전적 내용 외부에 레이먼드 카버의 향취가 많이 묻어나는 단편들이었다. 그 어떤 작품이라도 작가의 내면이 투영될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지만, 그게 어떤 고귀하고 진실된 내용일지언정 작가 자신의 자전적(혹은 고백적) 소설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다 본 뒤 드문드문 밀려드는 묘한 여운은 어쩔 수 없다.


+ 리스트 1차 목표였던 30위까지는 우선 달성됐다. 별 의미도 없고 감동도 없으나 기왕 시작한 거 100위까지 목록은 작성하고 계속하든지 그만두든지 해야겠다. (독서 속도로 봐서 꽤 오래 걸릴 듯) 블로그를 옮기려 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까진 못 느껴(=귀찮아서) 우선 리스트만 특화시킨 채 계속 유지할 예정이다. (구글과 통합 이후 이 블로그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봐야겠다.) 대신 다른 컨셉의 블로그를 하나 더 만들었다. 블로그와 트위터의 장점을 잘 조합해서 만든 그런 곳이다. 클릭(강요)



2010년 4월 30일 금요일

4월 21일 ~ 4월 3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NEW)

5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6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9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1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2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3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4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5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6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NEW)

17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8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9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0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1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2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4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8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9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


알랭 푸르니에, <대장 몬느>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


+ 겐이치로 형님이 짱이네 멋지네, 라는 소리를 이번 주에만 몇 번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의 작품은 아쉽게도 하위권에 랭크. 그의 소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 트위터에서 @gombimbee 님과 겐이치로 형님에 대한 얘기를 하던 중, 내가 그의 작품을 읽으면 디스크 조각모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하자 그가 이렇게 멋지게! 대답했다. "뭔가, 잘게 오려진 무수히 많은 색종이가 공중에 떠다니는 느낌? ㅎ 색깔은 모두 비비드하고, 결국엔 모두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고요. <야구>도, "골때리는" 색종이들이 막 떠다니다가 한곳에 안착하더라고요." 너무 마음에 드는 표현이라 그만 사랑한다고 고백할 뻔했... ( -_-);



2010년 4월 19일 월요일

4월 11일 ~ 4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NEW)

6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7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9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0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1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NEW)

13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15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6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8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19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0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1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2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6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7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너무 길어져서 접어둔다.


존 파울즈, <콜렉터>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2010년 4월 13일 화요일

당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1. 당신이 진정한 예술가라면 당신의 존재 전체를 예술에 쏟아넣어라.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되면 당신은 예술가가 아니다. G.P.는 그런 예술가를 <창조자>가 아니라고 불렀다.

2. 감정을 분출해서는 안 된다. 하찮은 고정관념 등을 사람들 앞에서 쏟아놓지 말라.

3. 정치적으로는 좌익이 되어야 한다.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들이야말로 이 세계를 염려하는 유일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4. 항상 창조해야 한다. 자신이 믿는 바를 실천해야 한다. 실천에 관한 말만 지껄이는 것은 그리지도 않은 그림을 자랑하는 것과 같다. 가장 나쁜 태도이다.

5. 무언가를 깊이 느꼈을 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나타내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 안 된다.

6. 자신이 영국인이란 사실을 받아들여라. 프랑스인이나 이탈리아인의 흉내를 내지 말아라.

7. 그러나 자신의 출신배경과 타협하지 말아라. 당신의 창조작업을 방해하는 과거의 모든 것을 잘라버려야 한다. 당신이 시골 출신이라면 (우리 부모가 시골 사람들을 비웃는 것은 그들의 출신을 속이려는 눈가림에 불과하다.) 시골의 모든 것을 버려라. 노동자 계급 출신이라면 당신 속에 있는 노동자 계급적인 요소를 마비시켜 버려야 한다. 다른 계급 출신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계급이란 유치하고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이다.

8. 애국심을 내세운 정치적인 일들을 혐오해야 한다. 정치와 예술과 그밖의 모든 것에서 순수하고 심오하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전부 혐오해야 된다. 어리석고 하찮은 것에 시간을 낭비하면 안 된다. 진지하게 살아야 한다. 보고 싶다 하더라도 시시한 영화를 보면 안 되고, 저급한 신문을 읽어서도 안 되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쓰레기 같은 프로그램을 듣거나 보지 말아야 한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당신의 삶을 잘 활용해야 한다.


ㅡ 존 파울즈, <콜렉터>, 183-184쪽, 장말희 옮김, 영웅출판


2010년 4월 9일 금요일

4월 1일 ~ 4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6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9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0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1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NEW)

13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4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5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16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1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8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9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0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4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5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일) 소설을 번역한 윤혜준 교수의 말처럼, 디포는 "호흡이 길면서도 갑갑하지 않고,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면서도 단순화시키지 않는"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였다. (번역하느라 수고 많았을 것 같다.) 초반에는 그 문체 때문에 읽는 맛이 나고 중반부엔 허구를 사실로 만들고자 분투하는 디포의 수많은 디테일들을 보며 읽는 맛이 나며 후반부는 스토리가 읽을 만하(지만 조금 지루한 면도 없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리얼리티가 떨어졌던 부분은 시간의 흐름과 심리의 흐름이 불일치하다는 점이었다. 디포는 로빈슨 크루소를 굳이 왜 그렇게 오랫동안 섬에 가두어 놓았던 것일까. 28년을 무인도에 살면서 그가 했던 고민과 생각들이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은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다. <로빈슨 크루소>는 정말 단순한 하나의 아이디어, 그러니까 "만약 '내'가 무인도에 홀로 남게 된다면"이라는 가정에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그리고 그 사소하지만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끝까지 밀어부쳐 소설로 만들어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지만, 학술적인 가치를 제외하자면 아쉽게도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마치 가공되지 않은 원석처럼 이 소설의 덜 다듬어진 부분이 아쉬워서, 현대의 작가들이 이 작품을 패러디하는 게 아닌가 싶다. 보통은 주요인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소설 후반부가 돼서야 등장하는 '프라이데이'를 을유문화사판에서는 '금요일이'라고 번역했고 그를 지칭하는 인칭대명사를 '걔'로 통일시켰다. 읽는 도중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얀 마텔은 분명 <파이 이야기>를 쓰며 여러 각도에서 <로빈슨 크루소>를 의식했을 것이다.


+ 나에게 고전이란, 그닥 내 취향도 아니고 썩 재미도 없지만 쉽사리 팔아 넘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책...인가?



잡담


1. 어제 밤새 인터넷을 하면서 우연히 척 팔라닉의 트윗을 알게 되었는데(당연히 팔로했고(*인터넷으로 트윗하는 게 익숙하지 않아 뒤늦게 안 사실인데, 내가 팔로한 누군가의 RT였다)), 오늘 낮에 깨어서 보니 내 타임라인에 그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을 언급하며 이 책의 리뷰를 링크시켜둔 트윗이 올라왔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아메리카의 나치문학>은 우리나라에도 번역본이 있고, 나 역시 얼마 전에 본 작품인데, 이 소설의 재미를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선 중남미 문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필요할 것 같다. (내 착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들이 백과사전적 소설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무었일까. 플로베르나, 허먼 멜빌이나, 줄리언 반즈나, 로베르토 볼라뇨나... 또 누가 있지?) 척 팔라닉의 작품이라고는 <파이트 클럽>만 한 번 본게 전부인데, (물론 소설을 영화화한 데이비드 핀처의 <파이트 클럽> 때문에 소설의 존재를 알았지만. 영화는 세 번쯤 본 것 같다.) 어쩐지 다시 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언제쯤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이건 이를테면 존 쿳시를 좋아하는 강영숙의 작품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과 유사하다. 하하. (오로지 소설의 구조적인 면만 봤을 때, 나에겐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과 척 팔라닉의 <파이트 클럽>이 짝패처럼 여겨진다.)

2. 예전에 이런 소문이 있었지. 패션잡지 <맥심>의 편집장으로 신해철이 낙점됐다고. 거기에 신해철이 딱히 부연 언급을 안 해 그저 소문에 그친 줄만 알았는데 소문이 진짜였나보다. 게다가 내가 챙겨보는 허지웅도 그 잡지에서 에디터로 일하게 된 것 같다. 새로운 <맥심>은 5월호부터. 2주쯤 후면 서점에서 볼 수 있겠다. 이로써 4월이 끝나기 전에 봐야 할 잡지가 <르디플> 4월호(3월호를 아직 덜 봐서 구입 못한 상태), <1/n>(오늘 도착할 예정)에 <맥심>까지 하나 더 늘었다.  전격 취소! 

3. <로빈슨 크루소> 후반부에 보면 선장을 배반한 선원들 얘기가 나오는데 (결국 로빈슨 크루소는 배방당한 선장을 도와 그 미지의 섬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고) 이 '선장을 배반한 선원들 얘기'가 여엉 낯이 설지 않다. 배나 바다와 관련된 작품에서라면 어디서나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딱 꼬집어 어딘가에서 예전에 접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품이었을까...?

4. 베짱이세실님의 트윗에서 최근에 이충걸이 "낭독의 발견"에 출연했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간만에 밤새는 김에) 찾아봤다. 덩달아 작년 8월경에 이충걸 단독으로 출연한 "낭독의 발견"도 보았다. (중반부부터 장석주도 출연한다.) 아, 세상에 그토록 뽀얀 피부와 미성의 목소리와 소년스러운 장난기를 가지고 있는 40대 중반의 남자라니. (대략 3,4년쯤 전에 장승욱 쌤의 <술통> 출간 기념회 술자리에서 이충걸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멀찌감치에 앉았기에 직접 대화를 주고받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야구 점퍼와 캡을 쓰고 청바지를 입었던 것 같다.) 더군다나 구어에서조차 꼼꼼하게 단어를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한 단어와 단어를 직조하는 데마저도 세심한 정성을 들이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주절대기 위해 만든 블로그라고는 하지만) 이토록 아무렇게나 주절거리는 내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 그의 이름으로 출간된 책 4권은 전부 부산에 있는데 (내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면) 아마 올 가을이나 겨울쯤에 그의 책을 다시 볼 일이 있을 것 같다.

5. 꿈에 한 30대 중후반쯤 되는 남자가 나왔다. 아버지와 아는 사이 같았는데 나로선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냥 곁에 있다가 별 생각없이 그에게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나는 정말 나이가 지긋하거나 '선생님'이란 호칭에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사람 외에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하는 데 거부감이 있는데 이상한 일이다.) 헌데 그 남자는 자신을 왜 (친근하게 형이라 부르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르는지 의아해하면서 조금 멋쩍어했다. 아버지께 물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 아는 사이였다면서 그분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나중에 집에 전화해서 이런 분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물어봐야겠다. 어차피 꿈이었다고는 하지만, 꿈에서 깨어서도 그 사람의 이름이 또렷하게 남아 있는 걸 보니 뭔가 의미심장... (괜한 의미 부여)


2010년 4월 2일 금요일

존 파울즈가 언급한 작가 혹은 작품


존 파울즈의 일기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에는 많은 수의 작가와 작품들이 언급되는데,
그중에 그가 좋게 본 작품들(작가들)에 대해서 나중에 찾아보기 쉽게 코멘트를 간략하게 정리해둔다.


52쪽 / 도스토옙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아주 침착한 객관성. 아주 차가운 시선. 희생당한 자. 그 단조로운 회색의 분위기가 아주 뛰어난 저널리스트의 정신으로 밝혀져 있다.

53쪽 / 헤로도토스를 읽고 위로를 얻다. 다른 시대, 다른 풍습, 강력한 상상력의 발휘. 미래가 엄청난 모습으로 다가올 듯한 느낌. / 108쪽 / 헤로도토스. 6개월 만에 독파하다. 아주, 아주 재미있었다.

61쪽 / 스콧 피츠 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깊은 감명을 받다. 지금까지 오랫동안 읽어 온 소설들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올더스 헉슬리나 에벌린 워보다 훨씬 훌륭하다. / 639쪽 / 우리는 라디오로 <위대한 개츠비>를 들었다. 여전히 완벽한 작품. / 746쪽 / 스콧 피츠제럴드의 장편소설 <미인과 저주받은 사람>. 피츠제럴드의 소설은 점점 나아지는 것 같다. 아주 비극적인 비전이고, 금세기의 가장 슬프고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다. 암에 걸린 작가가 암에 대한 글을 쓰는 것. 하지만 그 작가는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모르고 있다.

76쪽 / 프랑수아 비용. 그처럼 문학의 숲에서 독보적인 존재도 없을 것이다!

90쪽 / 챈들러의 <안녕, 내 사랑>을 읽다. 챈들러의 소설은 세련되었고, 독창적이며, 아슬아슬하다.

97쪽 /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너무나 위대하고 거대하고 신화적이어서 비평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187쪽 / T.S. 엘리엇. 그의 견해를 반박한다는 것은 짜증이 날 정도로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창작의 시금석이다.

331쪽 / 모파상, <미스 해리엇>. 모파상을 읽으면서 무기력의 파도가 나를 덮쳐 오는 것을 느꼈다. 리얼리즘이라는 까다로운 테크닉을 모파상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없다. / 487쪽 / 모파상. 나는 아직도 그의 작품을 읽으면 변함없는 즐거움을 느낀다. 왜 다른 작가들보다 모파상을 더 오래 읽게 될까? 무엇보다도 그의 소설은 내용이 풍부하고 범위가 넓다.

619쪽 / D.H. 로렌스의 <하얀 공작>. 그의 글쓰기는 때때로 학생의 글처럼 순진해 보인다. 물론 더러 뛰어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거기에 기적이 있다. 글쓰기가 순진할 때조차 인물들은 살아 움직인다.

619쪽 / 지드, <테제>. 위대한 소설이다. 지드는 유일한 테세우스다. 거칠고, 우상파괴적이고, 사고하는 사람. / 651쪽 / <배덕자>를 읽다. 걸작이다. 지드는 아주 미묘한 사항을 아주 간단하게 말하고 있다.

660쪽 / 제인 오스틴. 남자들은 그녀의 세계로 접근해 들어가지 못한다. 그들은 유리의 저편에서 여자들과 뚝 떨어진 채 헤엄을 치고 있다. 모든 여자는 유리 종 안에 들어 있고 남자들은 그 밖에 있다. / 704쪽 / <에마>. 이 얼마나 신비스러운 작품인가. 최근에 이렇게 많은 기쁨을 준 소설을 만난 적이 없다. / 709쪽 / <설득>. 이 책의 큰 매력은 해군인 등장인물들과, 제인 오스틴의 도덕 체계가 멋지게 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 710쪽 / 디킨스가 나쁜 <사람들>의 묘사에 뛰어나다면, 제인은 미덕의 묘사에 뛰어나다. / 723쪽 /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 악의를 다룬 아주 재미있는 작품. 하지만 중심적 주제에서 약간 벗어난 소설이다. / <오만과 편견>. 모든 작품 중에서 성적 긴장이 가장 높은 소설. 그런 긴장은 오스틴 소설의 비밀이다. 모든 것에서 성애의 광휘가 빛난다. 전희를 아주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 725쪽 / 제인 오스틴의 <샌디턴>. 오스틴의 작품들 중에서 이것이 가장 유망하다고 생각된다. / 766쪽 / 디킨스와 새커리의 모든 작품들은 제인 오스틴에 비해 보면, 뽐내는 원숭이와 마카로니 웨스턴에 지나지 않는다.

677쪽 / 디킨스. 그가 묘사하는 세계의 풍성함. 그것은 잘 구워 놓은 거위와 같다. / 683쪽 / 찰스 디킨스의 <어려운 시절>. 나는 이 경건하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책을 읽었다. / 758쪽 / 찰스 디킨스의 장편소설 <위대한 유산>의 제 29장. 이것은 진정으로 뭔가 심오하고 거대한 것을 포착한 획기적인 챕터들 중 하나다. 하나의 원형을 이루는 챕터다.

686쪽 / <베어울프>. 신선한 경험. 단순하고, 빠르고, 난폭하고, 완벽하다. 온 사회가 완벽하게 요약되어 있다. 시는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697쪽 / 커즌의 <수도원들>. 영어로 발표된 최고의 여행서 6권 중 하나. 그 여섯 권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다. 이 책은 좋은 여행서의 필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여행이 아니라 여행자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724쪽 /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은 부메랑이다. 사람들이 셰익스피어는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는 돌아오는 것이다.

733쪽 / 마크 트웨인의 <해외 도보 여행>. 트웨인은 위대한 원천이다.

738쪽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 위대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은 곧 죽어 없어질 운명이지만 그래도 위대하다. 그것은 작가가 삶의 본질을 제대로 짚었다는 뜻이다. 삶의 본질에 도달했다면, 그 작가의 방법은 성공한 것이다. 그게 어떤 방법이든 문제되지 않는다. 가령 조이스, 울프, 카프카 등을 한번 보라. 금세기의 문학에서 발견되는 그 어떤 비극적인 연애 사건들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 어쩌면 <위대한 개츠비>의 러브스토리가 이에 근접할 것이다.

739쪽 / 스탕달의 <파르마의 수도원>. 여기저기에서 잠깐 글 읽기를 멈추고 왜 이 책이 위대한지 생각해 보았다. 볼테르와 라신은 스탕달의 실질적인 부모다. 한쪽(볼테르)의 아이러니와 지독한 이기주의, 또 다른 쪽(라신)의 웅장함과 형식성. 가장 낭만적인 순간에도 스탕달은 묘사하고 관찰한다.

742쪽 / 그레이엄 그린의 <추악한 미국인>. 그린의 글쓰기가 초라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시적인 분위기의 글쓰기뿐이다. 버지니아 울프나 제임스 조이스 같은 작가들은 그린과는 반대편에 서 있는 산문 시인들이다. 디포 ㅡ 윌키 콜린스 ㅡ 그린 / 839쪽 / <불타버린 케이스>. 물론 그린의 다른 소설들처럼 술술 읽힌다. 앞으로 백 년 후인 2061년의 비평가들은 그런 가독성을 별로 높이 쳐주지 않을 것이다. 그린의 소설은 전체적으로 너무 짧고, 피상적으로 보인다. 물론 그린의 소설은 대부분의 현대 소설들보다 열 배는 더 훌륭하다. 하지만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의 수준이 비하면 실패작이다. <불타버린 케이스>는 스케치이지 소설이 아니다.

745쪽 / 나는 최근에 예이츠의 시를 많이 읽었다. 그 눈부신, 늘 뜻밖의 명쾌한 리듬이 목소리.

751쪽 / 에밀리 브론티의 <폭풍의 언덕>. 이 소설을 다시 읽고 그 매력에 거듭 빠져 들었다. 이 소설은 왜 대여섯 개의 위대한 영어 소설들 중의 하나인가? / 775쪽 / 낭만파에게는 위대한 소설이 없다. 사실, 낭만파의 가장 위대한 소설은 에밀리 브론티의 것이 유일한데, 그것은 디킨스와 기타 작가들이 <분위기> 창작이 발견된 뒤에 집필된 것이었다. 요컨대, 기술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하여 개발되어 왔든 것이다.

763쪽 /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를 읽었다. 대단히 아름답고 아득히 심오하기 때문에 눈물이 절로 흐른다. 그가 단 한 줄의 시행에 채워 넣는 그 많은 의미들이란!

774쪽 /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엉성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고전이 된 소설. 상징적인 진실, 두드러진 힘, 원형이 되는 아이디어. 심지어 소설 중의 사소한 인물도 상징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775쪽 /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감정 교육>. 가장 위대한 소설들 중의 하나. 디킨스와 새커리는 이런 수준의 작품에 견주면 얼마나 값싼가!

776쪽 /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 빅토리아 시대의 뛰어난 장편소설. 만약 엘리엇이 제인 오스틴보다 더 위대한 작가라면(물론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지만), 엘리엇의 아이러니가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리라. / 778쪽 / <미들마치>. 지금보다 4분의 1 정도를 줄인다면, 훨씬 더 위대해질 수 있는 소설.

803쪽 / 몽테뉴를 다시 읽다. 만약 대학살에서 책 한 권만을 구제할 수 있다면 셰익스피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다음 책은 몽테뉴라고 본다. / 825쪽 / 몽테뉴는 나를 부끄럽게 만든다. 지난 몇 년 동안 열심히 이 일기를 써왔지만 나는 몽테뉴에 미치지 못한다. 솔직함이 부족하고, 자기 진실이 부족하고, 몽테뉴적 의미로 "남에게 동의하는 태도"가 부족하다.

805쪽 /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월든>은 <유토피아>나 <캉디드> 수준의 작품이라는 뜻이다. 몽테뉴의 글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소로의 글이 곧 나의 글이라는 느낌이 든다. 마음속에 담아 두고 말하지 않는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883쪽 / "위대한 정의란 결국 잊어버리는 것이다."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 893쪽 / 셀린의 소설, <밤의 끝으로의 여행>. 주목할 만한 책. 나는 이 책을 말로의 <인간의 조건>과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수준이라고 본다. 잃어버린 세대부터 비트족의 작가들에 이르는 미국 문학의 전통도 이 책이 빚지고 있다. 사르트르의 소설들도 셀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 예리하면서도 신랄한 무능함의 감각. 그것은 내게 <캉디드>를 연상시킨다.

898쪽 / 브리튼의 <전쟁 레퀴엠>. 이것은 1922년 이래 영국의 예술 분야에서 나온 가장 위대한 작품이다(<황무지>, <율리시스>와 동급이다).

907쪽 / 결국 나는 영국 문학보다 프랑스 문학을 더 잘 알고 있고, 내가 가장 존경하는 거의 모든 소설가들은 과거든 현대든 프랑스 사람입니다(비록 제인 오스틴이 나의 명단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나는 영국의 어떤 작가들보다 지드, 카뮈, 심지어 라클로 같은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느낍니다.

981쪽 / 허드슨, <녹색의 장원>(1904). <녹색의 장원>은 <로빈슨 크루소> 못지않게 영국적이다. 좋은 작품이다.

991쪽 / 상황이 극단적이고 환상적일수록, 묘사와 대화는 더 현실적(카메라-눈)이고 진지해야 한다. 사례. <로빈슨 크루소>와 <정오의 어둠>. 추론. 상황이 평범할수록, 언어와 대화는 이국적이고 환상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사례. <율리시스>와 <댈러웨이 부인>.

1014쪽 / 머독의 <절단된 머리>. 나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헐뜯지만, 이것은 정말로 재미있는 책이다.

1021쪽 / (* 알랭 푸르니에의) <대장 몬>을 처음 읽었다. 크루소처럼 모래사장에서 발자국을 보고, 결국 이 섬에 내가 제일 처음 상륙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 이상한 체험이었다. <대장 몬>의 모든 행간마다 어른거리는 녹색의 유령은 내가 <마법사>에서 바라는 것과 비슷하다.

1088쪽 / 하디, <한 쌍의 푸른 눈>. 두 가지 점은 그의 조숙한 천재성을 잘 보여 준다.

1098쪽 / 나는 지금 존 클레어의 작품을 많이 읽고 있다. 오늘날 글을 쓰는 작가들은 모두 제2 혹은 제3의 존 클레어인 것이다.


시점에 대한 견해


 일인칭 글쓰기. 이것 이외의 소설 창작 기법을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내게는 일인칭 글쓰기가 일종의 비겁한 태도인 듯하다. 언젠가 삼인칭 서술로 글을 써야만 할 것이다. 나는 늘 삼인칭 서술을 구식의 비현실적 서술 방법이라고 여겼다. 이제는 그런 생각에 좀 의구심이 든다. 삼인칭으로 글을 쓰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ㅡ 존 파울즈


 (이 작가가 얼마나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불가피한 허세와 1인칭 주인공 시점에 따르는 무책임함을 결벽하게 꺼리는지 알 수 있다.) 소설의 화자가 편집자와 비슷해요. 1인칭 화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그의 눈을 통해 어떤 사건을 서술하죠. 그 방식이 아니면 저로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흔히 한국소설의 문제점으로 3인칭 시점을 구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많이 지적하는데, 제겐 그렇게 쓰면 안된다는 오래된 생각이 있어요. 약간은 윤리적인. ㅡ 김연수


2010년 3월 30일 화요일

3월 21일 ~ 3월 31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5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6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8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9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0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1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2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3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4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 (2)
15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 ] (1)
16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8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9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4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3일) 2주쯤 전에 이렇게 쓸 때만 해도 이렇게 금방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국 다음과 같은 주절거림을 열흘 만에 무시하고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보게 된 건 결국 검색을 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베짱이세실님의 이 포스팅 때문이었다. 이번에 2년여 만에 이 소설을 다시 읽게 되면서 몇 가지 점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내가 어떤 소설을 처음 볼 땐 그 소설의 주제 혹은 소설의 의도에 굉장히 주목하면서 본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떤 소설이 좋게 다가왔다면 반드시 한 번 더 봐야한다. 소설에는 주제나 의도밖에 없는 건 아니니까. 처음 볼 때 놓쳤던 것들을 다시 볼 때 하나하나 거둬들여야지.) 그밖에 이 소설은 정말 끝내주게 멋진 소설이라는 점과, 소위 진지한 소설을 쓴다는 인간들은 반드시 이 소설을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점과, 처음 볼 때도 너무 좋아했지만 특히 열 번째 "기소" 챕터는 톡 뜯어내서 들고다니며 잘근잘근 씹어먹고 싶다는 점과, 2년 동안 나는 플로베르를 전혀 보지 않았다는 가슴 아픈 자책과... <추락>과 더불어 믿음직스러운 친구가 생겼다는 기분이다. 좋은 친구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30일) 어느덧 네 번씩이나 봤다.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이번에는 원서로 봤는데 오스카 파트에 비해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편지 파트는 상대적으로 조금 어려운 듯한 느낌을 받았... 윗 문단에서 친구라는 비유를 사용했는데, 이 소설은 내게 친구라기보다는 연인에 가깝다. 그래서 그저 사랑스울 뿐이다. 어쩌겠나, 그래서 이성적인 관점으로 소설을 읽어내는 게 몹시 어렵다. 굳이 한마디로 표현해보자면, 소설만이 다룰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동원하여 소설이 굳이 다루지 않아도 되는 의도를 내포한 소설 정도? 이 소설이 생각 밖으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물론 기법상의 낯섦도 한몫 차지하겠지만) 크게 봤을 때 아들과 아버지에 대해 다룬 소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처럼 이삼십대 여자 독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에서 아들과 아버지에 대한 소설이 <엄마를 부탁해>처럼 인기가 있을 리가 없... (착각인가?)



+ 헌책방에서 마르케스가 쓴 <칠레의 모든 기록>을 구입했다. 칠레에 대해 조금 더 아는 일은 볼라뇨의 소설에 조금 더 다가가는 일이 될 터이고 그건 결국... 그나저나 볼라뇨의 새 번역본이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2010년 3월 27일 토요일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ㅡ 에서


 늦잠을 자는 바람... 에라이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존 파울즈의 일기 정리.


(1950년)

80쪽 / 안전한 길로 들어서는 것을 경멸하라.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해결안이다.
ㅡ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실천하는 것과의 괴리는 얼마나 큰가. 그러거나 말거나 요새 세상에 진정한 '안전한 길'이란 게 존재하긴 하는 걸까. 안전하게 보이는 길에도 얼마나 많은 지뢰들이 묻혀 있는 사회인가.

107쪽 / 어떤 책이든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세 번 정도 읽지 않는 한, 그 책에 대해 섣불리 평가를 내려서는 안 된다.
ㅡ 음... 두 번도 적다 이거지. 그래, 세 번.

134쪽 / 자신의 인생을 문학 창작의 도구로 삼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믿어야 한다.
ㅡ 서글프지만, 꼭 서글프다고만 할 수도 없는 이야기다.


(1951년)

144쪽 / 앞으로는 더 멋지고 더 세련되게 인생을 표현하는 일에 힘쓰도록 하자. 인생을 발견하려고 하지 말고.
ㅡ 일기든, 소설이든. 어차피 인생이 깊은 바닷속에 묻혀 있는 진주는 아니니까. 그런 게 존재하지도 않거니와.

161쪽 / 나는 글을 너무 많이 쓴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 학대다.
ㅡ 얼마나 많이 쓰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건지 궁금하다.

166쪽 / 우리는 함께 있으면 나른함과 부드러움이 전신을 감싸 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강력한 공감 같은 것. 우리는 서로에게 완전히 <얼이 빠졌다 abruti>고 말한다.
ㅡ 이런 감정을 못 느껴본 지가 벌써...

187쪽 / T.S. 엘리엇. 그의 견해를 반박한다는 것은 짜증이 날 정도로 불가능하다. 그는 모든 창작의 시금석이다. 스타일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는 플로베르와 말라르메의 논리적 결론이다.

207쪽 / 나는 한 여자를 전적으로 사랑할 수가 없고, 지금 G를 사랑하는 것처럼 여러 여자를 사랑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다른 여자들을 그녀보다 더 사랑할 수는 있을 것이나 결코 완벽하게 사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나 자신, 나의 미래, 나의 창조되지 않은 자아를 너무나 사랑해 나 자신을 완벽하게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257쪽 / 모든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가 모두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영역 성서는 뛰어난 천재의 작품이다. 호메로스가 그리스인들을 위한 것이라면 영역 성서는 영국인들을 위한 것이다.
ㅡ 2006년부터 매년 독서계획에 포함되어 있으나 4년 연속으로 실패하는 성경 읽기. 올해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 그나저나 한국인들을 위한 텍스트는 무엇이 있을까?

259쪽 / 자신의 상상력을 잘 조직하는 것은 창작으로 가는 핵심적 발걸음이다. 먼저 상상력의 결과물을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것, 새로운 쾌감, 새로운 조망은 그것이 새롭기 때문에 무조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1952년)

331쪽 / 리얼리즘이라는 까다로운 테크닉을 모파상처럼 완벽하게 구사하는 작가는 없다.

347쪽 / 성교는 인생이 한 가지 목적일 뿐, 사랑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개념이라는 것이었다. 그리스에서는 그런 견해가 거의 정상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377쪽 / 프랑스 사람, 프랑스, 이 나라의 생활 방식, 그 언어에 대한 사랑. 프랑스인은 건전한 자기중심주의자들이다. 그들의 생활은 균형이 잡혀 있다. 그들은 영성(靈性)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동물성을 인정한다. 그들은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판단하지만 그들에게 아첨을 하거나 비난을 하지는 않는다.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 황금의 중용(中庸), 고대 그리스의 정신을 계승한 현대인.

381쪽 / 훔치기는 스페인의 국민적 스포츠가 된 듯하다. 이것은 파시즘의 또다른 부산물이다. 위에서 힘으로 통치하니까 밑에서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ㅡ 비단 20세기 중엽 다른 나라의 일만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432쪽 / 말은 통제할 수 있었지만 눈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녀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선을 피하며서 말하는 것이었다.
ㅡ 으아 세상에나!

450쪽 / 나는 이제 독서량을 줄여야 할 때인 것 같다. 문학계의 중요 인사들을 대부분 알고 있으니까.
ㅡ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존 파울즈가 너무 부럽다. 난 아직 문학계 중요 인사들 중 반의 반도 보지 못했으니까. 한국에서 태어난 것도, 늦게 태어난 것도 죄가 될 순 없지 하하.


 (역시 일부만 옮겨둔다.) 존 파울즈의 작품이라면 예에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읽다가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아 절반쯤에서 덮었고, <컬렉터> 절판본을 구해 보긴 했으나 역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수업 때문에 3년 전에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다시 봐야 했다. 심지어 발표까지 해야 했는데, 그때도 역시 별로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지는 않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2>를 다 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역시 소설은 두... 번이 아니라 세 번은 보고 말해야... 특히 나처럼 비평적 관점이 부실한 독자라면.

 아래는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 대한 잡담. 리뷰를 쓴 것도 같은데 찾을 수가 없...;; 역시나 2007년 가을에 썼다. 괄호 안 별표 속 얘기는 당시에 쓴 것이고, 샵 뒤의 얘기는 지금 쓴 것.

펼쳐두기..



2010년 3월 26일 금요일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에서 몇 부분


73쪽 /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읽고 싶은 책 리스트 보내면 책을 사서 택배로 보내 줄게." (* 구정에 만난 형제들에게 홍지웅이 한 말)
ㅡ 나도 읽고 싶은 책 리스트 보내면 사서 보내주는 사람 주위에 있으면 좋겠... 내 취미가 책 리스트 만들긴데!

168쪽 / 나는 한국사의 경우, 대부분의 역사는 이미 배운 게 있으니까 감이 있을 테고 결국 사관이나 역사 인식이 문제일 텐데, 그런 것은 강만길 교수의 <고쳐 쓴 한국 현대사> 같은 책들만 꼼꼼하게 읽으면 전체적인 시각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 굳이 학회 활동이 필요하겠느냐며 경제사회학회에서 활동하는 게 유익하겠다고 권유했다. (* 한국사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싶다는 딸에게 홍지웅이 했던 말)
ㅡ 챙겨서 봐야겠다.

319쪽 / 이세욱 씨가 프랑스 오를레앙에서 공부할 때인데 교수가 "셰익스피어를 읽어 보려면 위고가 번역한 책을 읽으라"고 추천하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위고는 실제로는 영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고의 번역본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작가의 의도나 문장의 분위기를 아주 탁월하게 소화한 번역의 전범으로 평가받고 있단다. 나는 이세욱에게 번역에 얽힌 에피소드를 어느 잡지에든 게재했다가 나중에 단행본으로 내자고 제안했다. 이세욱은 그러자고 했다.
ㅡ 우선 셰익스피어를 읽고 내년부터 불어를 다시 공부하고 내후년쯤 위고가 번역한 셰익스피어를 읽어야지. 참, 사람 일이 말처럼 이렇게 착착 되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세군의 말에 의하면 이세욱 번역은 너무너무 좋다는데, 그래서 최근에 만날 때마다 이세욱 얘기를 들었는데, 저 번역 관련 에피소드는 언제쯤 단행본으로?
(안 그래도 존 파울즈와 관련해서도 <태풍>은 좀 꼭 읽어보고 싶은데... <로빈슨 크루소>도 이래저래 다시 봐야 하고. <로빈슨 크루소>와 엮이는 작품이 왜 이렇게 많은 거야! 이쯤해서 2007년 2학기 때 쓴 <로빈슨 크루소> 관련 과제 일부 첨부.)

뭐 굳이 이런 걸...


407쪽 / "나는 요즈음 소설 창작보다는 외국 문학 번역을 통해서 한국 문학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존 파울즈의 소설을 통해서 진정 소설 쓰기가 무엇인지를 배웠다." (...) "존 파울즈는 번역하는 데 너무 힘들어서 번역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작년(2003)에 나온 <일기Journals>라도 번역해 보자고 하니까 그건 책을 검토한 뒤에 생각해보잔다. (* 열린책들 권향미 주간이 번역가 김석희에게 소설 쓸 생각 접었냐고 묻자 김석희가 한 대답.
ㅡ이 대목 덕분에 최근 번역 출간된 존 파울즈의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보게 되었고 지금 보고 있다. 결국 이 책은 김석희가 아니라 번역가 이종인이 번역했다.

506쪽 / (*번역 및 번역자와 관련된 얘기를 몇 마디 하다가) 결국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해야 하는데, 번역자들도 기본적으로는 "자신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세욱은 "원작에 충실하게" 번역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따져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세욱은 그래서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번역학 총서에 번역 이론서보다는 차라리 번역 야사 성격의 책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프랑스에서의 호메로스의 번역, 불경의 번역, 삼국지의 번역 등 오히려 번역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모아 책을 내는 게 더 의미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다.
ㅡ 왜 이야기만 하고 책은 안 나오는 것임?

583쪽 / (* <희망의 원리>에 대해) 헤르만 헤세는 "오늘날의 시민 사회의 문화를 진단하고 해부한 역작으로 일반적인 사회주의 문헌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을 갖추고 있다"고 했고, 조지 스타이너는 "20세기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고 했다.
ㅡ 그렇군!

585쪽 / 창비, 민음사, 문지처럼 (* 요새 제일 잘나가는 문학동네는 5,6년 전만 해도 듣보잡이었음? ㅎㅎ) 문학 잡지도 내면서 작가들을 발굴하고 또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어서 한국 문학은 접었다.
ㅡ 그렇군!

708쪽 / 세 번째 제안. 출판물의 띄어쓰기나, 외래어 표기법 편람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얘기했다. "한글 맞춤법 문제는 국어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고, 언어권마다 외래어 표기법도 이견이 있지만 최소한으로 교정 편의상 통일을 하겠다는 거다. 예를 들면 어떤 출판사에서 여섯 권짜리 전집을 내면서 한 출판사의 A, B, C 세 편집자가 두 권씩 교정을 보았는데, 띄어쓰기가 A, B, C가 서로 달라서 애를 먹은 적이 있다. 국가적인 인력 낭비, 시간 낭비다. 출판사의 주간이나 편집장들이 모여서 서로 세미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해서 "통일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국립국어원이나 관련 단체와 공동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표준화시켜 갈 필요가 있다. SBI에서는 앞으로 교정 표준화 작업 외에도 이를 토대로 시험제도도 만들고 전문가도 양성할 예정인데 적극 도와달라."
ㅡ 우리나라에선 특히 책 만드는 데 드는 시간 낭비가 너무 심한 것 같다. 출판사별로 편집 매뉴얼이 다른 건 당연하거니와, 실제로 책임편집자가 누구냐에 따라 같은 출판사임에도 미세하게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가 있다. 진짜, "통일안"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는데 언제쯤이나 실현이 가능할지.


표시해둔 곳은 이보다 좀 더 되는데 이 정도만 옮겨둔다. 이밖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 내용은 김연경이 고골 전집을 열린책들에서 내기로 했다는 (아마도 구두의) 계획. 헌데 그 이후 번역 출간된 책은 민음사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 <지하로부터의 수기>뿐. 고골 번역 계획은 접힌 건가?

그나저나 뭐랄까, 들리는 홍지웅과 보이는 홍지웅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 두 개 다 진짜 홍지웅이겠지 뭐.


2010년 3월 19일 금요일

3월 11일 ~ 3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3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NEW)
1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 ] (1)
1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7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8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2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3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8일) 마크 해던의 소설을 작년에 보고 다시 봤다. 구문이나 단어가 어렵지 않은 편이라 원서로 봤다. 초반에 느껴지는 에너지를 끝까지 못 살린 듯한 느낌이다. 적당히 가족 모두 해피엔딩, 식으로 끝맺기보다는 좀더 화자의 내면에 집중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만 그건 뭐 순전히 내 생각이고.


+ 김언수의 <캐비닛>을 보다가 말았다. 처음 보는 소설이라면 무조건 끝까지 보겠지만 두 번째(혹은 그 이상) 보는 소설인데 별 감흥이 없으면 그냥 덮어도 괜찮을 것 같다.

+ 좋든 나쁘든, 고작 한 번 읽고 소설을 판단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겠다.

2010년 3월 11일 목요일

존 파울즈의 일기에서


 존 파울즈가 20대 중반이던 시절 만나던 여자가 해준 이야기. <나의 마지막 장편소설 1> 165쪽에 나온다. (제목에 '소설'이 있지만 이건 엄연히 일기다.) 일종의 심리 테스트라고 할 수 있다.

 "강의 양쪽 둑에 다섯 채의 집이 있다. (*책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부연하자면, 강 왼쪽엔 A와 B의 집이, 오른쪽엔 C,D,E의 집이 있다.) 유일한 연결 고리는 나룻배를 운영하는 집인 D이다. E는 여자인데 A와 약혼했다. B는 E를 짝사랑하는 남자다. 어느 날 E는 약혼자 A를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D를 찾아갔으나 마침 집에 없다. 그녀는 C를 찾아가서 그의 조언을 구한다 그는 강에 홍수가 나서 위험하니 집에 있는 게 좋겠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D를 찾아내어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는 물이 불어난 강을 보더니, 그녀가 몸에 걸친 것을 모두 내놓는 조건이라면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동의한다. 그는 그녀를 강 건너편으로 데려다 주지만, 그녀는 이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E는 A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그는 집에 있지 않다. 당황한 그녀는 B의 집으로 가서 좀 있게 해달라고 말한다. B는 그녀를 집 안에 들여놓고 옆에 앉으라고 말한다. 그는 그녀에게 옷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그녀를 만지지는 않는다. 그때 A가 B의 집으로 왔다가 약혼녀가 알몸으로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는 화를 내면서 파혼을 선언한다.
 
 당신은 어떤 순서로 이 사람들을 존경하는가? 누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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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0일 수요일

주절주절


 국어사전에 대한 중요성을 이제야 깨닫고 업계(?)에선 명성이 자자한 <보리 국어사전>을 저렴한 가격으로 얼마 전에 구입했다. 하루에 열 페이지씩 반년간 꾸준히 봐 매년 두 번씩 완독하자는 심정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그만! ... 그만두어버렸다. 반년 계획은 나에겐 아직 무리다. 고작 한달 계획을 세워도 수 차례 변경하는 인간이 반년은 무슨... 초중등학생을 위한 사전이고는 해도, 거기에 수록된 단어들만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알아도 충분히 좋을 글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들었으나, 읽어가는 도중 찾아오는 압도적인 회의감이... 초등학교 학급회의도 싫어할 만큼 회의적인 사고를 싫어함에도 어쩔 수 들이닥치는 그런... 이 사전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중학교에 입학한 사촌동생에게 선물로 줄까;)

 
 당분간 한국어로 쓰인 소설을 읽지 않겠다! ... 고는 해도 과연 지킬 수 있을까. 사람이 자신의 욕구를 다 충족시키며 살 수는 없는 법이다. 특히 이루고 싶은 바가 있다면 그것을 위해 다른 몇 가지들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지! ... 라고 말은 이렇게 쉽게 내뱉지만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한국 작가의 소설은 외국어로는 볼 수 없으니 예외로 두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읽을 시간이 온 것인가;) 볼라뇨도 예외. (예외가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 그보다 이 문단이 언제 통째로 사라질지 모르겠;;) 복합적인 의미인데, 소설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쯤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2010년 3월 9일 화요일

3월 1일 ~ 3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2)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3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NEW)

15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6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2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9일) <암병동>은, 신선하거나 독특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잘만 다루면 꽤 매력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구조로 쓰인 소설이다. (세군의 말에 의하면 이와 유사한 소설로 카뮈의 <페스트>가 있다고 하는데 조만간 한번 읽어봐야겠다.) 굳이 이 소설의 특징을 다른 소설과 비교해보자면 이보 안드리치의 <드리나 강의 다리>과 할 수 있겠는데, <암병동>이 공시적인 측면에서 암병동 내의 사람들 개개인을 통해 당대의 러시아를 보여주고 있다면, <드리나 강의 다리>는 통시적인 관점으로 드리나 강 주변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발칸 반도 400년 역사를 가로지른다. (너무 억지스럽군;) 러시아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고리키(밑바닥)에서 시작되어 솔제니친(수용소)에서 끝났다고는 하지만 하나의 '주의'로 소설이나 작가를 판단하는 건 간편한 동시에 안일한 일이 아닌가 싶다. 내가 러시아인이었다면, 혹은 20세기 러시아에 대해서 잘 아는 독자였다면 이 소설이 재미있었을까? (잘 모르겠다.) 좀 오버해서 말하자면, 겨우 다 읽었다.



(10일) 최수연이 옮겨 열림원들에서 출간된 허먼 멜빌의 <빌리 버드>를 읽다가 2장까지 보고 덮어버렸다.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만한 처지(입장/주제)가 못되지만 아무리 그래도 28페이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문장은 좀 너무했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늘날 널리 무시당하고 있는 인간의 타락과 원죄라는 교리를 확증하려는 것으로 보일지는 몰라도, 원시적이고 때묻지 않은 덕목들이 누구든 문명이라는 겉옷을 입고 있는 어떤 사람을 특별히 특징짓는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그 덕목들의 관습이나 인습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관습이나 인습에서 벗어나 있는 것ㅡ실로 마치 카인의 도시와 도시화된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이 시대로부터 예외적으로 대물림된 것ㅡ으로 나타나리라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이 문장이 단 한 문장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나는 내 한국어 독해력에 대해 심사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29페이지에 있는 다음의 짧은 구절은 또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의 멋쟁이 선원은 어디에서든 찾아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 못지않게 대단한 남성미를 갖고 있었지만," 남성미가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지. 한국어를 읽는 데 자괴감이 느껴져 이럴 바엔 아예 원서를 직접 보는 게 낫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번역자가 이 소설을 번역하며 독자들에게 실제로 원했던 것일지도 모르겠고.




2010년 3월 7일 일요일

횡설수설하는 플로베르의 앵무새


 배고프다. 진작 안 자고 왜 이 시간에 배고프다 투덜대는 거냐. 난 언제쯤 1시 전에 잠잘 수 있을까. 블로그에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이 들어 뭐라도 끼적대고 싶었으나 고작 한다는 말이... 거의 한 이 주째 한 시 전에 잠자는 데 실패하는데, 이게 전부 책 때문이고 인터넷 때문이다. 저녁 먹고 서점에서 <씨네21>에 실린 천명관 인터뷰를 후다다다닥 봤는데 마지막 천명관의 대답에 줄리안 반즈, <플로베르의 앵무새>가 나와 너무 반가웠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도 읽은 지 벌써 2년이나 됐다. 아래는 2년 전에 휘갈긴 흔적.

플로베르의 앵무새와 관련된 횡설수설


 다시 보고 싶은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책 보는 시간은 늘 한정적인데 보고 싶은 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여러 모로 속상하다. 지금은 솔제니친의 <암병동>을 보고 있는데 모레쯤이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꺼운 책이기는 하지만, 다른 책들도 같이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 보는 데 2주나 걸리다니;; 두꺼운 책 보느라 수고했으니 이후 멜빌 형님의 중편을 하나 보고 도선생의 작품으로 들어가야겠다...만 그 사이 맘이 또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2월 20일 ~ 2월 28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5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NEW)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7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8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2)
9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0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1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2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4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6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1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20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1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5일) 하 진의 소설을 읽으면서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와 김영하의 <검은 꽃>이 떠올랐다. 김연수 소설의 경우, 연재본은 연재본 대로 단행본은 단행본 대로 조금씩 아쉬운 부분이 있고, 김영하 소설의 경우... 서문과 친구의 말에 의하면 후반부는 어설픈 중남미 스타일이라고 했던가. 둘 다 이미 두 번씩 읽은 소설이지만 올해 내로 다시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하 진의 <전쟁쓰레기>처럼 굳이 소설이라는 서사 장르가 아니어도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에는 크게 끌리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쓴 이야기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대단한 에너지가 있다. <기다림> 때도 그랬거니와, <전쟁쓰레기>를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휘몰아치는 어떤 감정이 느껴졌다. 그것은 이를테면 소설의 고전적 미덕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외국인이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 아닌가. 읽는 내내 도대체 이 작가는 자료 조사를 얼마나 꼼꼼이 했을까 하는 생각을 그치지 않았다. 원서를 찾아보면 되긴 하지만 한국어 번역본엔 하 진이 참조했다는 도서목록이 나와 있지 않아 아쉬웠다. 왕은철 교수가 직접 번역한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 드문드문 있었지만 내 섣부른 추측이겠지 뭐... <기다림>과 <전쟁쓰레기>는 비슷한 듯 다른 소설이며, 각각의 주인공들은 다른 듯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두 작품은 각각 2000년, 2005년 펜/포크너상 수상작이다.



리스트 일차 목표였던 30위까지 작성하기 위해 앞으로 남은 소설 아홉 편.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돌고 돌아


 다른 두 나라의 작가가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서 만났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을 해보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 없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영어로 소설 쓰는 중국 태생 하진의 <전쟁쓰레기>에 나오는 주인공 중국인과, 한국에서 한국어로 소설 쓰는 한국 태생 김연수의 단편 "뿌넝숴"에 나오는 주인공 중국인은 대단히 비슷한 시기에 한국전쟁에 참여하게 된다(만 시기상 만났을 가망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리고 새로운 소설은 그런 추측들이 쌓이고 쌓여 탄생하는 거겠지.

 미루고 미뤄왔던 하진의 <전쟁쓰레기>를 (처음 접한 지 3년 만에 드디어) 읽을 생각을 하니 감회가 새롭... 번역본이 나오기 전인 2007년 번역 수업 시간에 처음 접하게 됐는데(물론 당시엔 삼분의 일 정도밖에 보지 못했고), 거제 포로수용소 얘기도 있고 해서 당장 좀 읽어볼 예정.

 뜬금없는 얘기기는 하지만, 2년 전까지 김연수의 골수팬으로서, 지금까지 김연수 최고의 작품은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라고 생각한다. (올해 내로 다시 읽어봐야지.)

 김연수의 번역본 중에 하진이 쓴 <기다림>이 있어서 하진이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고, 하진이 쓴 작품 대부분을 왕은철이 번역하여 왕은철이라는 번역가(겸 교수)를 알게 되었으며 왕은철이 번역한 작품을 찾아 읽다가 쿳시라는 작가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돌고 도는 거지.


 작년에 한국에 출간된 소설 중 기대중인 작품들을 당장(신간으로) 사지는 못하고 목록만 만들어뒀는데 온라인 헌책방을 뒤적이다가 그중 세 권을 발견하여 구입했다. 오로지 맨부커상 수상작이라는 이유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화이트 타이거>, "여러분 책장에 꽂혀 있는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옆자리를 좀 비워놓으시라"는 추천사 때문에 사샤 스타니시치의 <군인은 축음기를 어떻게 수리하는가>, 몇몇 리뷰들에서 받은 인상만으로, 그러니까 순전히 감으로 토마스 브루시히의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물론 이 소설 세 편 다 내 책장에 얌전히 꽂혀 있는 다른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언제 읽힐지는 모를(그러나 반드시 읽힐), 현재로선 그런 처지. 나보코프의 <사형장으로의 초대>가 헌책방 사정상 값작스레 사라진 바람에 못 와서 좀 아쉬움. 언젠가 다른 곳에서 저렴한 가격에 만나겠지 뭐.


2010년 2월 18일 목요일

빌리티스의 노래


"볼라뇨는 성애 문학과 고딕 문학에도 뚜렷한 관심을 보였다. 그는 처음 훔친 책이 피에르 루이스의 얇은 책이라는 것은 기억했지만 그것이 <아프로디테>인지 <빌리티스의 노래>인지는 확실히 기억하지 못했다." (<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57쪽)

"교수는 책을 보더니 혀를 차더군요. <빌리티스의 노래>가 근대적인 성애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출판됐을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빌리티스의 노래>는 피에르 루이스가 쓴 산문시집입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306,307쪽)


ㅡ 이렇게 만나는 거지.


2월 10일 ~ 2월 19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3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 (3)

5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NEW)

6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NEW)

7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NEW)

8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9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10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1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2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1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14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15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1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1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1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19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20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0일) <슬로우 맨>에 대해선 여기서 떠오르는 대로 주절거렸으니... 쿳시의 경우, 나이가 들어감에따라 이전 작품들에서 보였던 강렬함이 조금씩 약해지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쵸큼 아쉬움. 나이보다는 이주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작년도 부커상 후보에 올랐던 <써머타임>을 기대해봐야징.

 

(14일) 좀 더 알았으면 좀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읽는 내내 들었다.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보고 나서 든 생각과 유사하다.) 세군에 의하면 여기 나온 인물들은 (완전히 허구의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제 작가들의 패러디적 성향이 강하다고 하는데(그러면서 한국 작가들의 예를 들기도 했고)... 음, 아무튼 궁금한 점이 많다. 예전에 세군과 대화중에, 굳이 자주 만나거나 많은 대화를 나눠보지 않아도 직관적으로 '내 과'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는데, 나에겐 볼라뇨가 그렇다.  


(16일) 아주 들뜬 맘으로 읽기 시작한 <칠레의 밤>, 다시 읽어야겠다. 다른 건 모르겠고, 볼라뇨는 문학이 무엇을 해야 하며 소설이라는 장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인식이 정확하게 있는 것 같고, 그중에 후자가 나는 참 마음에 든다. (18일) 수많은 상징과 은유로 석양처럼 붉고 어둡게 빛나는 칠레의 밤. 처음 볼 때 147쪽의 "습관은 모든 조심스러움을 무디게 하고 일상은 모든 끔찍함을 누그러뜨리는 법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그땐 몰랐는데, 다시 보니 너무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식으로 놓친 게 한두 개가 아닐 거야. 나는 시를 좀 봐야 해. <신곡>도 좀 제대로 봐야...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