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31일 토요일

오츠이치


 <여름과 불꽃과 나의 사체>를 보았다. 아무튼 이런 소설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가진 어휘력으로는 소설에 대해 한 마디도 표현하기 힘들어 다른 사람들의 감상을 읽고 싶게 만드는 소설. 그런 의미에서 샐린저의 단편소설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다르다... 고 쓰고 보니 어쩐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샐린저 단편을 안 본 지가 꽤 돼서 기억이 아리송하여 잘 모르겠는데 흠. 아무튼 소설을 읽고 나서 이렇게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느낀 게 샐린저 이후 꽤 오랜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엄청나게 읽어댔지만 딱히 눈에 띄는 리뷰는 없었다. 샐린저를 읽고 표현하기 힘들었던 그 느낌을 살려 소설로 쓴다고 썼었는데, 한 2년 반 전에... 뭐...

 그리고 또한, 고진이 말한 '발견된 아동'의 의미에서는 히구치 이치요가 떠올랐다. 그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키재기>. <키재기>의 20세기 버전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19세기 말엽의 아이들이 20세기 말엽에 와서는 이렇게 변했다는 식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소설 배경의 분위기(마을)는 두 소설이 대단히 비슷하다.

오츠이치 사진.





2009년 10월 9일 금요일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http://news2.cnbnews.com/category/read.html?bcode=91346&load_bal=yes

 

 

 올해 노벨문학상은 처음 들어본 작가가 탔고(번역된 책이 없으니 그럴 수밖;;), 올해 부커상도 처음 들어본 작가가... 그 말은 곧 쿳시가 떨어졌다는 얘기.

 

 오늘 이 사실을 확인했는데 위 링크된 기사에서 쿳시의 신간이 출간됐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아, 출간 소식만으로도 심장이 두근거리는 작가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 책 제목은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당장 주문하려고 했으나 온라인 서점엔 아직 안 떴네. 번역은 물론 쿳시 소설을 전담해서(?) 번역하시는 왕은철 교수가 했고, 꾸준히 쿳시 소설을 펴내던 들녘이 아니라 출판계의 대기업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위 소설은 이번에 부커상 후보에 오른 소설이 아니라 2년 전에 출간된 소설이다. 쿳시나 하진이나, 대학교에서 교수하면서 열심히 소설도 써내고 하는데 우리나라 작가들은 교수만 하면 그걸로 그냥 끝이니 나원참. 우리나라만큼 오육십대 작가의 활동이 부진한 나라가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