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일 수요일

간밤에 내가 깔깔댄 이유는...


// 여기저기서 거침없이 죽이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물론, 일꾼들을 부추기고 충동질해서 그곳까지 끌고 온 자들의 목소리였다. 그들의 말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그것은 그 어떤 백 마디 말보다도 힘이 있었고 그 어떤 논리보다도 설득력이 있었으며 그 어떤 선전문구보다도 자극적이었다. 그것은 구호의 법칙이었다. 재청에 뒤이어 봇물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온갖 종류의 구호들이 쏟아져나왔다.

 (* 이제부터 웃기다.)

 이날 쏟아진 구호들 가운데, '벽돌을 못 쓰게 죄다 깨뜨려버립시다!'나, '가마를 부숴버립시다!' 혹은 '공장에 불을 질러버립시다!'와 같은 주장은 잔뜩 화가 난 일꾼들 사이에서 일견 나올 법한 얘기였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파쇼에게 죽음을! 노동자에게 생존권을!'이나 '재벌독재 타도하여 노동자 천국 이룩하자!'와 같은 구호는 산골짜기에 있는 벽돌공장에서 써먹기엔 다소 유난스런 감이 없지 않았으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나 '수령님의 영도 따라 미제를 박살내자!'와 같은 구호는 다소 수상한 감이 없지 않은데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벽돌공장이 웬 말이냐!'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독재 물러가라!'와 같은 구호는 다소 때 이른 감이 없지 않았는데, 또 어디선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영숙아, 사랑해!'나 '씹할, 그때 홍싸리를 먹는건데'와 같은 소리는 그야말로 구호도 아니고 뭣도 아닌, 분위기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 내지른 잡소리에 불과했다 아니할 수 없다. // (205-206p)


// 큰 물고기가 산속에 떨어지면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고
    남쪽에서 오노 사내가 술에 취하면 너희의 자손은 검불처럼 쓰러지리라. 

 (...)

 그날의 사태는 금복이 대충 집 안팎에 고수레를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당장에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온 큰 물고기란 게 과연 무엇이냐, 그리고 재앙을 불러온다는 사내가 과연 누구냐 하는 것에 집중되었다. 이에 대한 온갖 추측과 견해, 짐작과 해석, 주장과 설이 난무했다. 이른바 그 유명한 공수논쟁의 시작이었다. 그 논쟁에는 당시 평대의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모두 뛰어들어 서로 편을 갈라 물고 뜯고 할퀴다, 대개의 논쟁이 그렇듯이 결국 서로간에 깊은 상처만을 남기고 말았는데, 이에 대해 대강 살펴보는 것도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듯싶다.

 (...) 이이 대해, 두 구절이 모두 각기 다른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가정법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실은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표현한, 즉 단일한 사건에 대한 예언이란 설과, 두 개의 문장이니 당연히 독립된 두 개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가 팽팽히 맞섰다. 이에 따라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일사학파(一事學派)와 두 개의 독립된 사건으로 보는 이사학파(二事學派)로 나뉘어 한동안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그들은 '산속'이 평대를 가리키고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했지만 산속에 떨어진다는 '큰 물고기'의 해석을 두고 다시 의견이 엇갈렸다. 일사학파는 불기둥이 치솟아 하늘에 닿는다는 따져볼 것 없이 남성의 발기된 성기를 가리키며, 이로 미루어 큰 물고기는 여성의 성기를 의미한다는 해석을 내놓았다. 따라서 노파의 공수는 저주가 아니라 생전의 노파를 사로잡았던 반편이의 거대한 성기를 찬양하는 동시에, 남녀간의 운우지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자 이사학파에선 불기둥을 지나치게 도식적으로 해석하고 이를 모든 범주에 기계적으로 무리하게 적용함으로써 해석상의 전반적인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큰 물고기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그것은 지난 전쟁에서 등장한 신무기, 즉 미사일을 가리킨다는 거였다. 미사일이 마치 물고기처럼 유선형으로 생긴데다 뒤에 나오는 불기둥이란 말과 정확하게 호응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이제부터 웃기다.)

 곧 미사일론에 대한 반박이 뒤따랐다.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노파가 어떻게 미사일을 아느냐는 거였다. 귀신이기 때문에 모르는 게 없다는 해명에 대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는 반박이 나왔으며, 뒤이어 어따 대고 선배 앞에서 그따위 개소리를 하느냐는 성명이 발표되자, 너 대학 어디 나왔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 씹쌔야, 어딜 나온 게 무슨 상관이냐는 반론이 제기되자, 저 새끼, 싸가지 없는 건 학교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는 인물평과, 저 새끼는 학계에서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야 한다는 매장론이 뒤따랐으며, 선배 무시하다 뒈지게 맞고 피똥 싼 놈 많다는 협박과, 누군 씹할, 고스톱 쳐서 학위 딴지 아냐는 고스톱 학위론, 그럼 씹쌕꺄, 미사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섁꺄, 니 애비 좆이라니까, 라는 식으로 반박이 줄줄이 이어지며 논쟁은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어갔다. // (240-243p)


// 언젠가 한 정치가가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는 평대에서 공산주의자를 완전히 몰아내야 된다며 입에 게거품을 물었다. 금복은 파이프를 물고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 정치가의 말을 듣고 있다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ㅡ 그런데 그 공산주의라는 게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이죠?
 그러자 정치가가 대답했다.
 ㅡ 그것은 물건이 아니라 생각의 이름이죠.
 ㅡ 생각에도 이름이 있나요?
 ㅡ 당연히 있죠. 세상에 이름이 없는 건 없어요. 사회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실용주의, 고전주의,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실존주의, 표현주의, 물신주의, 개인주의, 사실주의 초현실주의, 배금주의, 물질만능주의, 한탕주의, 맹견주의…… // (261p) 빵 터짐... 풉


이건 모두, 천명관이 쓰고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고래>에서 나오는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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