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경에 처음 읽은 이 소설을 4년여 만에 다시 읽으며 가장 많이 했던 고민은 이 소설을 계속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점이었다. 지금껏 계속 좋다고 생각해온 소설이, 막상 다시 읽어보니 기대치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었던 이유는, 이번이 <고래>의 마지막 독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읽다 만 소설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싫어서였다. 어쨌거나 이 소설은 잘 읽히는 편이고, 결론적으로 끝까지 읽어내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에서 결말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나를 매혹시킨 구절은 다음과 같다. 어차피 이 부분만 읽어선 도대체 이게 뭐가 그리 매혹적인지 알 수 없겠지만 읽어본 사람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건 마치 베이징 올림픽 당시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 경기에서 이승엽이 8회초에 날린 홈런과도 같은 것이다. 그때까지의 올림픽 야구 과정을 알지 못한다면 이승엽의 그 홈런이 얼마만큼 감동적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어쨌거나, 인용구절.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오른 소설은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었다. 물론 디아스의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소설 역시 <고래>였다. 소설들에서 나타나는 몇 가지 (어쩌면 사소하고 어쩌면 중요한) 공통점 때문에 이 두 소설이 내게는 짝패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오르는 제목의 문제.
기억하기로 <고래>의 원래 제목은 "고래"가 아니었다. 어떤 이유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소설 관계자들은 "고래"라는 제목이 이 소설을 담아내기에 여러 모로 적합하다고 여긴 것 같다. 그러나 이번에 이 작품을 다시 읽으며, 소설의 원래의 제목이 훨씬 더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 예전 제목 역시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힘들지만, 소설 속의 한 구절을 보며 그것이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었다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붉은 벽돌의 여왕"이었다. 물론 분량상으로 봤을 때 이 소설은 붉은 벽돌의 여왕, 즉 춘희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 주변부, 특히 그(녀)의 모친이었던 금복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소설 말미에서 "붉은 벽돌의 여왕"을 접한 순간 이 소설이 결국 춘희, 즉 붉은 벽돌의 여왕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었으니까. 그건 마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 단순히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대한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소설이 마침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라는 것처럼.
마지막으로, 이 소설은 화자(혹은 작가)의 입담과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소설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만 가지고도 소설이 충분히 매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고래>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책 말미의 심사평이나 수상작가 인터뷰에서 드러나는 문창과 교수, 소설가, 문학평론가들의 호들갑스러운 상찬은 눈엣가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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