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답했다. "당신이 타이핑하는 것은 매일매일 써 가는 의견들이어서 잡문에 속해요. 잡문은 시작과 중간과 결말이 있는 소설과는 달라요. 그것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나도 몰라요. 독일인들의 원하면 계속되는 거죠."
"이런 걸 왜 써요? 다른 소설을 써 보면 어때요? 당신이 잘하는 건 소설 아닌가요?"
"소설이라고요? 아니오, 내게는 더 이상의 인내심이 없어요. 소설을 쓰려면 아틀라스 신 같아야 해요. 일이 진행되는 동안 온 세상을 어깨에 짊어지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견뎌야 하는 아틀라스 신 같아야 한다고요. 지금의 나로서는 너무 무리예요."
내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 모두한테는 의견이 있잖아요. 특히 정치에 관해서는 말이죠. 당신이 이야기를 하면 적어도 사람들은 입을 닫고 당신 말에 귀를 기울일 거예요. 이야기든 농담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그가 말했다. "이야기는 스스로 얘기하는 것이지, 얘기되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일생 동안 이야기를 갖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알아요. 자신을 강요하려 하면 안 돼요. 이야기가 스스로 얘기하도록 기다려야죠. 기다리면서 그것이 귀먹고 말 못하고 눈먼 상태로 태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거죠. (...)" // (65-67p, 강조는 인용자)
예술의 편을 들어 적어도 이렇게 말할 수는 있다. 모든 예술가들이 최선의 것을 위해 노력하는 한, 예술의 영역을 경쟁적인 정글로 돌리려는 노력들은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비지니스는 예술 분야의 경쟁에 투자하기를 좋아한다. 경쟁적인 스포츠에 돈을 퍼붓는 덴 더 열심이다. 하지만 운동선수들과 달리 예술가들은 경쟁이라는 것이 실체적인 것이 아니고 선전을 위한 곁다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술가들의 눈은 결국 경쟁이 아니라 진실한 것, 선한 것, 아름다운 것을 향하고 있는 것이다. // (135,136p, 강조는 인용자)
사랑. 가슴이 간절히 염원하는 것. // (194p)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영감을) 은총의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온 속삭임도 아니다. 그것은 끈기와 장악을 통해서 당신이 주제와 일체(一體)가 되는 순간이다. …… 그 주제를 몰아치고, 그 주제도 당신을 몰아친다. …… 모든 장애물이 사라지고, 꿈도 꾸지 않았던 것들이 당신에게 일어난다. 그 순간에는 이 세상에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 (주: The Fragrance of Guava, trans. Ann Wright (London: Verso, 1983), p.34.) // (212p, 강주는 인용자)
// J.M. 쿳시, <어느 운 나쁜 해의 일기>, 왕은철 역, 민음사
이쯤에서 빠질 수 없는 쿳시 형님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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