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정
2010년 7월 29일 목요일
2010년 7월 20일 화요일
7월 11일 ~ 7월 20일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먼 별>(1996)_[100708] (2)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00706] (2)
14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7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8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9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0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21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3위. 윌리엄 백퍼드, <바텍>(1816)_[100713](1)
2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6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7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로부터의 수기>(1864)_[100620] [100711] (2)
28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30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31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2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3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4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7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8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9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11일) 로쟈님의 도스토예프스키 강의를 통해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왜 씌었는지 그 속에 담긴 구절들이 어떤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설인지, 더불어 도선생 후기 소설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봐을 때 이 소설의 중요성 등에 대해 듣기는 했으나 재미없는 건 어쩔 수 없다. 2부는 그럭저럭 볼 만했으나 1부는 시종일관 졸렸다. 과대망상에 자의식 과잉의 중2병 캐릭터의 독백을 보는 건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그 속에 뜻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을 지라도. 톨스토이를 존경하며 도스토예프스키를 까댔음에도 도선생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나보코프는 심지어 1부는 소설도 아니라고 했다고...
(13일) 두어 달쯤 전에 친구가 빌려준 책인데 안 보고 있다가 <먼 별>에 나와있길래 어떤 이야기인가 싶어서 봤다. 이야기로서의, 그러니까 책 뒤표지에 나와 있듯 "프랑스 비평가와 독자들이 선정한 <이상적인 도서관Bibliotheques ideales>의 장서 목록 중에서, '환상과 경이' 부문 베스트 1위를 차지"할 만큼 이야기의 매력은 풍부했지만 소설로서 그리 큰 매력은 못 느꼈다. (아래는 보르헤스가 <바텍>에 관한 글을 쓰면서 했던 착각에 대하여)
보르헤스의 글을 읽다가
보르헤스의 <만리장성과 책들>에는 "윌리엄 백퍼드의 <바테크>에 관하여"라는 짧은 글이 있다. (물론 <바테크>와 <바텍>은 같은 책.) <바텍>을 다 본 후 보르헤스가 쓴 글을 흥미롭게 읽던 중에 "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소설의 줄거리를 언급하는 부분이었다.
"탐욕에 눈이 멀어 버린 칼리프는 상인의 목소리에 무릎을 꿇고 만다. 상인은 마흔 명의 인신 공양을 요구한다. 그로부터 피비린내 나는 여러 해가 흐른다." (<만리장성과 책들>, 242쪽)
문제는 보는 것처럼 진하게 표시해둔 저 마흔 명. 분명 정영목 선생이 옮기고 열림원들에서 출간된 <바테크>에선 마흔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안달하는 칼리프여! 내 목이 바짝바짝 타고 있으니 내 목마름을 완전히 달래기 전에는 문을 열 수 없다. 아이들 쉰 명의 피를 다오. 그대의 대신과 고관들이 낳은 가장 아름다운 아들들 가운데서 쉰 명을 뽑아야 한다." (<바텍>, 34쪽)
이후에도 이 소설에선 '쉰 명'에 대한 언급이 몇 차례 더 나온 걸로 봐서 쉰 명이 맞는 것 같은데 보르헤스는 어쩌다 마흔 명이라고 착각했을까? 사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어쩐지 대가의 이런 사소한 실수를 발견하는 것도 독서의 한 재미인 것 같다.
+ 열린책들에 문의한 결과 보르헤스가 착각한 것이 맞고 다른 나라 번역본에서도 똑같은 실수가 반복되었다고 한다. 새 번역본이 나올 때 수정해서 각주로 처리한다고 했다.
(14일) <먼 별>을 다시 읽었다. 이 소설에는 많은 이야기와 작가와 시인과 작품이 등장하는데, 그걸 이용해서 재미있는 글을 한번 써봐야겠다. 몇 달 후 출간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일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훌륭한 작가는 유머를 정말 잘 구사한다. 그냥 단순히 하하호호 웃기는 그런 유머 말고. 웃음과 씁쓸함을 동시에 유발시키는 유머.
+ 얀 마텔의 <셀프>를 읽다가 말았다. 지금까지 나름대로의 소설 읽기 원칙이라면 (처음 읽는 작품에 한해) 한번 읽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보자! 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정말 오랫동안 읽힌 고전이 아니라면 굳이 지루함을 견뎌내면서까지 읽고 싶지는 않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접하지 못한 다른 책을 보는 게 낫지. <파이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얀 마텔은 (소설이 품고 있는 에너지의 교류 측면에서) 나랑은 별로 안 맞는 작가인 것 같다.
2010년 7월 9일 금요일
7월 1일 ~ 7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00706]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7위. 로베르토 볼라뇨, <먼 별>(1996)_[100708] (1)
18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9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20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1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2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3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4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5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7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8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9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30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1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2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3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6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7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8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6일) 볼라뇨의 <부적>을 다시 봤다. 소설 내용은 여전히 어두침침한 느낌이었지만 화장실 타일 위의 상현달 혹은 하현달의 달빛이 조금은 더 선명해진 것 같다. 2장에서 주인공은 멕시코 국립 자치 대학교 인문대학을 돌며 자발적으로 일을 했는데 이 부분에서 문득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 나오는 한 인물이 떠올랐다. 처음 볼 땐 별로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이 많았는데 그중 160쪽에 나오는 "안데스 산맥의 식인종 럭비 선수들"에 관련된 내용도 마찬가지였다. 책을 보다가 말고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나 싶어 검색해보았더니 실제 있었던 일. (다큐멘터리 영화를 포함해) 관련 영화도 두 편이나 있었다. 이제 <먼 별>을 봐야지.
(8일) 볼라뇨의 <먼 별>을 봤다. 이전까지 본 세 편의 작품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읽혔다. 반면 완성도의 측면에선 상대적으로 살짝 못 미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다시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카를로스 비더를 이 소설의 핵심 인물이라고 봤을 때 중반부에 나온 후안 스테인과 디에고 소토의 이야기는 조금 동떨어진 내용이 아닌가 싶다. 초반부와 후반부는 범죄소설적 스타일 덕분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다. (사실 내가 느낀 이 소설의 진짜 매력은 옮긴이의 말에 나와 있는 것처럼 작가의 "방대하고 탐닉적인 독서광의 면모"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는 점이었다. 볼라뇨 같은 독서광이 되고 싶다.) 어찌 됐건 이 소설 역시 분량이 적은 편이니 이번 달 내로 다시 볼 수 있도록 해야겠다.
2010년 6월 30일 수요일
6월 21일 ~ 6월 3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 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로베르토 볼라뇨, <부적>(1999)_[100630]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7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8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9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20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1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2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3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4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6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7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8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9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30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1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2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5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6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7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30일) 서점에서 <먼 별>과 <부적> 중 무엇을 먼저 볼까 훑어보다가 첫 구절이 인상적이라 <부적>을 먼저 보게 되었다. 바로, "이 이야기는 공포물이다. 탐정 소설, 누아르 소설, 호러 소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말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이 나 자신이고, 그래서 그렇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잔혹한 범죄 이야기다."라는 구절. 하지만 이 소설이 "잔혹한 범죄 이야기"라는 점은, 아후벨이 그린 <부적>의 책 표지만큼 선명하게 와 닿지 않았다. 그것은 멕시코(및 라틴 아메리카) 역사(문학사)에 대한 무지 때문일 것이고, 시공을 무시하는 작가의 초현실적인 서사 기법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며, 현실과 환상을 엮는 수많은 은유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칠레의 밤> 때와 마찬가지로,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사실 이 작품은, 장르의 특성상 소설이라 불리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다 읽고나면 소설에 대한 감흥보다는 시적인 인상이 더 강하게 남는 소설이다.
+ 매번 택배 이사만 하다가 처음으로 용달차를 불러서 이사를 했다. 차를 타고 1년 반 이상 오르락내리락 하는 동네를 떠나는데 기분이 참 묘했다.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정든 곳에서 멀어지는 건 늘 아련한 기운에 휩싸이게 한다. 그러니까 요는, 이사 하느라 책을 거의 못 봤다는 소리. 7월 1일부터는 다시 열독, 열작 모드로 살아야지.
2010년 6월 20일 일요일
6월 11일 ~ 6월 2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4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5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8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9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1984)_[100618] (1)
20위.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_[100620] (1)
21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2위. 다니엘 디포, <로빈슨 크루소>(1719)_[100408] (2)
23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5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6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7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8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9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30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31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3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4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5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6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데이비드 로지, <아주 작은 세상>
(21일) 절판된 데이비드 로지의 <아주 작은 세상>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고 단박에 구입한 건, 작년 마음산책에서 이 책이
<교수들>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됐기 때문이었다. 어떤 책이든, 한 번 절판됐다가 시간이 흐른 후 재출간 되는 책이라면
관심이 많다. 그만한 가치와 독자 수요가 있기 때문에 재출간된다는 나름의 판단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재출간되는 책이 모두 내
기대를 충족시켜준다는 보장은 없고, 아쉽게도 이 책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소리는 아니고.)
이야기의 배경 자체가
아카데믹하다는 점(영문학 학부 전공자 정도의 상식이나 문학 이론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보면 좀더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그리고 그 이야기를 파편적으로 구조화했다는 점을 빼면 이 소설에선 가독성 좋은 대중소설의 향취가 많이
묻어난다. 후반부에는 심지어 '막장드라마'의 기운이 느껴지도 했다. 하지만 앞에 언급한 두 가지 이유가 크게 작용한 소설이라...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말이냐!)
이 소설이 그닥 맘에 들지 않는 이유는 (제목(원제는 Small World)을 고려한 건지 어떤 건지) 이야기 사이에 너무 많은 작위와 우연이 삽입됐기 때문이다. (세상이 얼마나 작은가 하는 점을 말하려고 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야기에 공감하기가 쉽지 않았다. 사실 이런 식의 파편적 구조라면 조만간 재출간될 E.L.닥터로우의 <래그타임>이 이야기 자체도 훨씬 풍성하고 내적 논리도 단단하다. 물론 주제나 이야기 방식은 좀 다르다고 기억하지만. (이쯤에서 예전에 써둔 간단한 메모를 첨부.)
E.L. 닥터로우, <래그타임>
E.L. 닥터로우의 <래그타임>을 읽었다. 1975년에 미국에서 출간된 책인데 우리나라에선 1992년에 번역돼 나왔다. 왕(은)철 교수가 번역했다. (* 당시 내가 이 책을 본 이유는 왕은철 교수가 번역했다는 이유가 전부다.) 역자의 미국 친구에 의하면 이 소설에는 "돈, 정치, 문화, 섹스, 페미니즘, 아나키즘, 인종차별, 서정, 폭력, 노동운동, 역사, 정치, 로맨스, ... 등등 무엇이나 다" 들어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고...
이 소설은 작가가 표현하려 하는 시공(20세기 초반 미국)에, 여러 인물이 대등한 비율로 등장하여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들어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매력적인 점은 언뜻 아무 관련이 없는 각 인물들이 교묘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참신하다고 느낀 점은 각 인물들이 작가에 의해 순수 창작되기도 한 반면 역사상 실재한 인물이기도 한 사실. 실재 사건이나 인물이 나타남에도 이 소설이 역사소설이라는 카테고리에 포함되지 않는 이유는, 비유하자면 그런 것들이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데 자전거에서 두 바퀴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보조 바퀴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에 두 바퀴 역할을 하는 중심 이야기는 없다. 각각의 이야기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연결되어 맞물려 돌아간다. 중심 이야기가 없기 때문에 한 이야기에 집중해서 볼 수 없다는 점은 단점이 될 수 있겠지만, 각 인물들이 어떤 식으로 만나게 될지, 각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될지 궁금하게 만드는 점은 장점이 될 수도 있겠다.
다음은 이 소설의 내용과 형식을 다 포괄해서 담을 수 있는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얼음 위에는 스케이트 날 자국이 겹겹으로 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노인이나 스케이트 타기를 두려워하는 가족들을 롤러가 달린 의자에 태우고 살포시 밀고 다녔다. 그러나 소년의 눈에는 사람들이 스케이트를 타면서 만드는 자국만이 보였다. 좀전에 만들어진 스케이트 자국이 다른 자국에 의해 재빨리 지워지고 다시 그 자국이 금세 지워지며 또 다른 자국이 만들어지는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년은 삶이란 바로 이런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114p)
다음 작가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대목.
"아버지는 늘 자기 가족은 축복받은 가족이라고 생각해 왔다. 바로 그것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가 하는 일이란 상황이 요구하는 그런 일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콜하우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북극에도 가보았고 아프리카에도 가보았고 필리핀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서부로도 가보았다. 그는 그것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은 것이 세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학술대회가 주요 배경이라 여러 도시와 지역에 대한 묘사가 많은 편인데, 여기에 나오는 곳들 중 가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이를테면 알랭 드 보통이 쓴 <공항에서 일주일>의 배경이 되는 히드로 공항이라든지, 오르한 파묵의 <검은 책>이나 <이스탄불>의 배경이 된 이스탄불이라든지, 더 말할 것도 없는 그리스의 이곳저곳...
올 초에 데이비드 로지의 <소설의 기교>라는 책도 번역돼 나왔는데 언제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도스토예프스키, <지하생활자의 수기>
(20일) 7월부터 시작되는 로쟈님의 도선생 강좌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우선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봤다. 예전에도 지루하다는 이유로 보다가 만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도 (특히 1부에서) 여러 차례 졸음이 쏟아졌다. 겨우 참으면서 볼라치면 화자의 찌질한 면모에 그냥... 앙드레 지드는 이 소설을 가리켜 "도스토예프스키의 전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라고 평했는데, 아직 지드의 관점에 다다르려면 한참 먼 것 같다. 무엇보다 도선생의 작품 중 읽어본 게 많지 않기도 하고. 감상이라고 딱히 남길 말이 없어서 속상하다. (뭐냐 이 뻔뻔한 고백은!) 이번에는 문예출판사 판으로 봤는데 강좌를 듣고 열린책들 판으로 읽어본 뒤 다시 써봐야겠다.
이대로 접긴 아쉬워서 밑줄 그은 곳 일부를 발췌한다.
"그건 그렇고, 의젓한 인간이 진심으로 만족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화제란 도대체 무엇일까? / 답 ㅡ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이다." (9쪽)
"당신들도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가장 세련된 살륙자는 거의 한 사람 예외도 없이 최고의 문명인들"(34쪽)
"어느 누구의 추억 속에나 몇몇 절친한 치구 이외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아니 친구에게조차도 털어놓을 수 없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그것도 아주 은밀히 고백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일도 있다.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고백하기 두려운 경우도 있다." (57쪽)
일전에 누군가 도스토예프스키와 라이트 노벨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피상적이나마 언급한 걸 본 적이 있는데 이번에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읽으며 소설 속에 드문드문 묻어 있는 라노베적 기운을 느꼈다. 하지만 둘 사이의 유사점을 면밀히 살펴보기에 난 도선생도 라노베도 아직 얼마 읽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말인가!)
2010년 6월 9일 수요일
6월 1일 ~ 6월 10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5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6위.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2002)_[10060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20위. 존 파울즈, <마법사>(1966,1977)_[100607] (1)
21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3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4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5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6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7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8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9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31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2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3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4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존 파울즈, <마법사>
(7일) 존 파울즈는 <마법사> 개정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전문적 관점에서는 조금도 만족스럽지 않았던 소설(처음에 평을 한 많은 사람들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을 대부분의 독자가 늘 가장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받아들이게 되었다."(5쪽) 하지만 나는 아직 멀었는지 대부분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읽어본 존 파울즈의 소설 중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고 재미도 없었다. 부분부분 흥미로운 내용이 있기는 했으나 이렇게 긴 분량에 그 정도의 부분도 없으면 말이 안 되겠지. 소설의 구조가 중반을 넘어가야 보인다는 부분은 차치하더라도, 그 전까지 나온 내용들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도 않고 단순히 자기 과시적(자위적)이라는 느낌도 많이 받았다. 별로 할 말이 없다. 끝까지 봐야 한다는 일념으로 다 봤으나 중간에 그만뒀어도 괜찮을 뻔했다. 몇 년쯤 지난 후에야 다시 볼 마음이 생길지 어떨지... 이 소설을 좀 더 풍요롭게 보기 위해선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특히 <태풍>이나 <오셀로> 정도는 기본적으로) 봐줘야 하고 그리스-로마 신화나 호메로스의 작품과 친숙하면 좋을 듯하다.
니시오 이신, <잘린머리 사이클>
(9일) 다른 서사 장르(연극,드라마,영화,만화,애니메이션 등)로의 전환이 쉽지 않은 소설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 점에서 니시오 이신의 소설은 목에 가시 같은 존재였다. 내 취향이 아닌 게 분명하지만(만화나 애니메이션으로의 전환이 용이하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파우스트 계열 작가들 중 빼놓고 넘어가기에는 걸리는 게 많은 작가였기 때문에. 그래서 데뷔작이자 "헛소리 시리즈"의 시작이며 23회 메피스토상 수상작인 <잘린머리 사이클>을 읽고 나서 결정하기로 마음먹었다. 계속 볼지, 아니면 이걸로 끝낼지. 그래야 개운할 것 같았다.
초반까지만 해도 이 책으로 끝일 줄 알았다. 하지만 중반, 종반으로 갈수록 이 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 묘한 매력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신본격 미스터리"로서의 장르적인 재미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말장난(헛소리)의 수준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역시 헛소리라면 이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분명 니시오 이신은 도선생의 <죄와 벌>에 나오는, "저는 헛소리를 좋아합니다. 헛소리란 게 참 놀라운 거거든요. 백마디 헛소리를 하다보면 언젠가는 진리에 도달하게 되지요."라는 구절을 알고 있을 것이다. 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한 자기만의 인식이 명확했기에 가능한 헛소리라는 생각이 들었고,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과도하게 개인화된 개인들(독자들)에게 보내는 '청춘'에 대한 메시지까지 분명하게 녹아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396쪽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대사 - "...이 녀석을 좋아해요." (...) "그러니까, 그만 두세요" - 에선 소설의 정점을 찍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긴박한 상황에서 이런 식의 대사를 구사해버리다니. 그런 말을 한 주인공에게도, 그런 전개를 택한 작가에게도 살짝 감동했다고나 할까... (수줍)
어쨌거나, 이로써 니시오 이신의 헛소리 시리즈를 계솔 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왜 뒤에 "OTL"을 붙이고 싶을까... ( -_-)a)
단편들
박민규, "루디"
ㅡ 예전에 박민규의 "깊"을 보고 어마무지하게 탄복한 적이 있는데 이 단편을 보고나서도 그랬다. 다들 조그마한 저수지에서 아웅다웅하는 동안 혼자 바다에서 노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소설이라는 느낌이었달까. 인터넷의 누군가는 박민규가 이제 세계문학을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박민규는 앞으로 한국 내 작가 중에서 (천박한 분류기는 하지만) 순수, 대중, 장르, 라노베 정도로 나뉜 한국 소설 독자들을 고루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작가가 될 가망성이 크다. <문학과 사회> 여름호에는, 진작부터 챙겨보았던 독문학 전공의 조효원 평론가가 박민규의 "루디"를 보고 이렇게 써놓기도 했다. 미래의 한국문학사가들에게 2010년 봄은 "루디"로 기억될 것이고, 그것은 "루디"가 이룬 수많은 성취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라고.
데니스 루헤인, "그웬을 만나기 전"
ㅡ 2년 만에 읽은 단편인데, 여전히 좋았다. 후쿠시마 료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의미를 발견해야 할 수고 없이도, 리얼리티와의 접점을 모색해야 할 필요 없이도,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단편이다. 다음은 2년 전에 이 단편을 읽고 해둔 메모. // 얼마 전에 학교 도서관 신간 코너에서 어떤 책이 있나 두리번거리다가 데니스 루헤인의 단편집 <코로나도>에 있는 “그웬을 만나기 전”을 보았다. 책 뒤표지에 있는 소개 문구 때문이었다. 2005년에 발표되어 “올해의 미국 최고 단편선” 뿐만 아니라 “올해의 미국 미스테리 단편선”에까지 실렸다고 하니. 형식적인 면은 전부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초반엔 잘 안 읽혔다. 중반부터 속도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선 채로 한 번 다 읽고 의자에 앉아 그 자리에서 한 번 더 봤다. 주제 그 자체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이 참 대단한 소설이었다. 그 소설집에 있는 다른 단편도 몇 편쯤 더 봤는데 이 소설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소설은 없었다. //
2010년 5월 29일 토요일
5월 21일 ~ 5월 31일
1위. 존 쿳시, <추락>(1999)_[100208] (2)
2위. 줄리언 반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_[100322] (2)
3위. 존 파울즈, <만티사>(1982)_[100516] (1)
4위. 조너선 사프란 포어,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2005)_[091206][100330] (4)
5위. 존 쿳시, <야만인을 기다리며>(1980)_[100430] (2)
6위. 이언
매큐언,
<토요일>(2005)_[100115] (1)
7위. 존 쿳시, <엘리자베스
코스텔로>(2003)_[100505] (2)
8위. 존 파울즈, <콜렉터>(1963)_[100413] (2)
9위.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1969)_[100206] (2)
10위. 하 진, <전쟁쓰레기>(2004)_[100225] (1)
11위. 아모스 투투올라, <야자열매술꾼>_[100521] (1)
12위. 로베르토
볼라뇨,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1996)_[100214] (1)
13위. 로베르토 볼라뇨, <칠레의 밤>(2000)_[100216][100218] (2)
14위. 라위 하지, <드 니로의 게임>(2006)_[100111] (1)
15위.
J.M. 쿳시,
<슬로우 맨>(2005)_[100110] (1)
16위. 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1967)_[100419] (1)
17위. 김사과, <미나>(2008)_[091216] (1)
18위. 천명관, <고래>(2004)_[091203] (2)
19위. 미셸 투르니에, <황금
구슬>(1985)_[100424] (1)
21위. A.M. 홈스, <이 책이 당신의 인생을 구할 것이다>(2006)_[100127] (1)
22위.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1925)_[091221] (2)
23위. 마크 해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2003)_[100318] (2)
24위.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암병동>(1968)_[100309] (1)
25위. 코맥 매카시, <로드>(2006)_[100108] (2)
26위. 에밀 졸라, <쟁탈전>(1872)_[100124] (1)
27위. J.M. 쿳시, <어둠의 땅>(1974)_[100110] (1)
28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 야구>(1988)_[091214](2)
29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존 레논과 화성인>(1985)_[091209] (2)
30위. 다카하시 겐이치로,
<사요나라 갱들이여>(1982)_[091208] (2)
31위. 하인리히 뵐, <9시 반의 당구>(1959)_[100118][100121] (2)
32위. 김연수,
<바다 쪽으로 세 걸음>(1부연재)(2009)_[091229] (1)
(21일) 아모스 투투올라의 <야자열매술꾼>은 참 기상천외한 소설이다. 기상천외하다는 점에서 라블레의 <가르강튀아 /
팡타그뤼엘>이나 마이조 오타로의 <아수라 걸>이 함께 떠올랐다. 이 소설은 "죽은 술시중꾼만한 술시중꾼이 없기에
그를 찾아 나선 사나이의 이야기"(183p)다. 그런 가운데 '판타지한' 스토리가 연속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판타지 장르의 작품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기존의 판타지 작품에는 보는 사람이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습, 논리, 규칙들이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는 애시당초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상의 얼개
자체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그런 이유로 보는 시종일관 기발하고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낯설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역자가 "작품해설"란에 적어둔 것처럼 "구전 문학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으로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191p)은 탁월한 선택이었으나 그것이 입담 좋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들에게 구성지게 풀어놓는 투였다면 더욱 좋을
뻔했다.
+열흘 동안 저 (얇은) 책 한 권밖에 못 봤다. 계획대로라면 존 파울즈의 <마법사>도 다 봤어야 하지만 아직 1권도 다 못 본 상태. 어제 밤부터 몸이 안 좋아서 오늘(5/30) 오후까지 계속 자다 깨다 했다. 그래도 뭘 좀 먹어야겠다 싶어 동네 죽집에서 죽을 사왔는데 3분의 1도 못 먹었다. 이렇게 사경을 헤맨 채(응?) 누워 있는 동안 경기지사 심상정 후보가 끝내 사퇴하고 말았다. 내가 비록 경기도민은 아니지만, 괜히 아팠던 게 아닌 것 같다. 기분도 꿀꿀한데 나중에 장원준과 김광현의 선발 맞대결이나 봐야겠다. 이제 오예스 먹으면서 허기 때우며 밤 새는 짓은 하지 말아야지. 그래도 5월이 끝나기 전까지 하려고 했던 일 딱 하나만은 무사히 끝내서 다행이다 싶다. 소설가 김연수의 말대로 인간의 의지만큼 나약한 게 어디 있나 싶다. 그래도 이 약해빠진 의지 하나 믿고 계속 가야지.